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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싸야 통한다, 확 바뀐 전기차 성공 공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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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차포터2 일렉트릭

현대차포터2 일렉트릭

전기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통용됐던 ‘소형에서 대형으로, 저가에서 고가로’라는 성공 공식이 힘을 잃고 있다. 대신 테슬라발(發) 가격 인하 경쟁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저가 소형 전기차가 대세로 떠올랐다.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와 함께 다양한 차종이 발표되는 것도 시장 질서 재편을 가속하고 있다.

기아 EV5

기아 EV5

3일 시장조사기관인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기아가 지난 6월 첫선을 보인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의 8월 등록 대수는 551대에 그쳤다. 6월과 7월도 각각 665대, 1682대였다. 사전 계약 물량이 1만여 대인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전장 5m가 넘는 EV9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만든 첫 대형 전기차이자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신기술을 털어 넣은 야심작이었던 만큼, 실제 판매량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반면 기아가 지난달 출시한 경형 전기차 레이 EV는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말까지 진행된 사전계약 물량은 6000대로 올해 판매 목표 4000대를 초과 달성했다. 가격은 2735만~2955만원이다. 경형 전기차로 분류돼 개별소비세·교육세·취득세가 면제된다. 개인 및 법인 사업자는 부가세도 환급받을 수 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EV9의 초반 부진과 레이 EV의 선전은 전기차 시장 변화의 방향성을 압축해 보여준다. 전기차 시장이 ‘대형→소형으로, 고가→저가로’ 재편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미국은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기아는 다음 달부터 미국에서 EV9을 판매할 예정인데, 판매량에 따라 대형 전기차의 시장 안착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앞서 기아 북미법인은 지난달 말 EV9의 기본형 모델 가격을 5만4900달러(약 7458만원)로 책정해 발표한 바 있다. 마이클 와일드 기아 북미법인 상품기획 디렉터는 지난 7월 열린 EV9 출시 행사에서 “미국 시장에 이 정도의 크기와 성능, 디자인을 갖춘 대형 SUV는 없다”며 전기차 1위 테슬라를 견제하기도 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자동차 업계에선 대형차 선호도가 뚜렷한 미국 내 EV9 판매량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EV9에 대한 반응이 미 시장에서도 저조할 경우 현대차가 내년에 선보일 예정인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7 출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EV9은) 초반 품질 문제와 리콜 등으로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데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가성비 중시 현상도 판매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했다.

기아 레이 EV

기아 레이 EV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도 전기차 가격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리튬이온(NCM) 배터리 대비 30~40% 저렴하다. 중국 배터리 선두 주자 CATL과 비야디(BYD)는 LFP 원천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다. BYD는 LFP의 단점으로 꼽히는 낮은 효율을 극복한 차세대 LFP 배터리 ‘블레이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해 생산한 글로벌 전기차 4대 중 1대가 LFP 배터리를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는 레이 EV에 중국 CATL이 만든 LFP 배터리를 적용해 가격을 낮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LFP를 탑재하면 4000만원대인 코나 전기차 가격이 3000만원대로 낮아져 고객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저가 전기차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만5000달러(약 3396만원)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다. 기아는 이달 12일 ‘기아 EV데이’를 열고 준중형 전기 SUV EV5의 국내 출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캐스퍼 전기차 모델을 내년에 공개한다. 폭스바겐은 2000만원대 소형 전기 SUV ID.2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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