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7년 만에 다시 만나는 김정희, ‘전정우 추사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를 20년간 연구한 서예가 전정우의 개인전이 4일 열린다. 사진은 ‘계산무진’. 추사의 작품을 전정우가 재해석했다. [중앙포토·사진 전정우]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를 20년간 연구한 서예가 전정우의 개인전이 4일 열린다. 사진은 ‘계산무진’. 추사의 작품을 전정우가 재해석했다. [중앙포토·사진 전정우]

“추사체는 강건하면서도 청초하고, 현대적이면서 괴기한 면도 있습니다. 그 매력과 깊이가 엄청납니다. ‘추사체를 쓰기 위해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요.”

20년 간 추사 김정희(1786~1856)를 탐구해온 전정우(75) 서예가가 개인전을 연다. 4일 서울 종로구 마루아트센터에서 시작하는 ‘심은 전정우 추사전:사후 167년 만에 추사를 만나다’ 전시다. 전시에는 전 서예가의 추사체 임서(臨書·베껴씀)와 추사체를 접목한 창작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다. 추사체 관련 작품만으로 열리는 첫 서예 개인전이다.

그는 “한국 최고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67년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이어나갈 작가가 없어 명맥이 끊길 위기”라며 “추사 선생의 예술혼을 알리고 전승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3일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를 20년간 연구한 서예가 전정우의 개인전이 4일 열린다. 사진은 ‘불이선란도’. 추사의 작품을 전정우가 재해석했다. [중앙포토·사진 전정우]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를 20년간 연구한 서예가 전정우의 개인전이 4일 열린다. 사진은 ‘불이선란도’. 추사의 작품을 전정우가 재해석했다. [중앙포토·사진 전정우]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50여 점은 추사의 대표작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추사가 한자 5체, 즉 전·예·해·행·초서로 남긴 추사체 작품들을 탐구해 이를 임서하거나, 추사체 아닌 다른 서체에 추사체를 일부 섞어 새로운 작품을 창작했다.

김양동 계명대 명예교수는 “심은의 글씨를 보니 추사 선생의 재림을 보는 것 같다”고 전시를 평했다. “심은 선생만큼 추사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라는 게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서예가)의 설명이다. 안종익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도 “추사체의 명맥이 끊어지고 이를 지도할 사람도 없는 한국 서단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번 전시는 추사체 복원과 진흥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정우

전정우

1948년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전정우 서예가는 경기공고 공예과,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서예 대가 고(故) 김응현 선생을 사사했다. 한국화재보험협회,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11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서예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직했고 1986년부터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을 걸었다. 이듬해인 1987년에 동아미술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의 대표 작품은 129서체 천자문이다. 한석봉·김정희·김생 같은 국내 명필의 필체뿐 아니라 상형문자, 고대 글씨체 등을 익혀 129가지의 서체로 1150여 종의 천자문을 남겼다. 이를 완성하는 데 2004년부터 2022년까지 18년이 걸렸다. 대개 서예 작품은 많아야 수십 자를 쓰면 되지만 천자문은 말 그대로 1000개의 글자를 써야 한다. 유명 서예가의 이름이나 호를 붙여 통상 사용하는 특정 서체는 대체로 30개 안팎의 글자 정도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30개 글자만 원본이 남아 있는 특정 서체로 천자문을 쓴다면 나머지 970개 자는 서예가가 연구해서 써내야 한다.

전 서예가는 자신의 호를 따 ‘심은(沁隱) 서체’도 창안했다. 한글 및 한문 혼용 서예와 서첩, 문자 추상 회화 등 심은 서체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17일까지 열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