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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떨어진 '한방울'도 찾는다…'마약지문' 쫓는 저승사자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강원본원) 독성학과 실험실서 이재신 독성학과장이 실험준비를 하고있다. 김민욱기자

지난달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강원본원) 독성학과 실험실서 이재신 독성학과장이 실험준비를 하고있다. 김민욱기자

지난달 25일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독성학과 감정실. 마약 복용·투약 의심자에서 채취한 모발이나 소변 시료를 감정하는 곳이다. 이날 이곳에서는 모발 시료 감정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감정 작업은 고감도 질량분석기를 사용한다. 머리카락을 3㎝가량 길이로 잘게 잘라 유기용제에 넣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약 성분이 반응한다.

이런 방식으로 아무리 적은 용량의 마약이라도 검출할 수 있다고 한다. 0.02ng/mg(모발 1mg당 1억분의 2mg)까지 검출할 수 있다. 국제 규격 수영장(길이 50m·폭 25m·깊이 2m이상)에 떨어진 약물 한 방울을 찾아내는 거와 같다고 한다. 국과수엔 여러 신종 마약류를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는 질량분석기도 있다.

국과수는 마약감정 전쟁 중 

국과수는 국내에서 마약을 감정하는 대표적인 국가 기관이다. 국내에서 검거된 마약 투약 의심자 시료나 압수한 마약은 대부분 이곳으로 모인다. 이곳은 마약 검출에 오류가 거의 없어 ‘마약계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몽골, 스리랑카 등 해외서도 배우러 올 정도다.

마약은 주로 소변과 모발을 감정해 검출한다. 약물은 투약 후 1주일이 지나지 않으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아 소변에 남아있다. 이후에는 머리카락을 감정해야 검출할 수 있다. 모발은 한 달에 평균 1㎝씩 자란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에 얼마만큼 마약 성분이 있는지를 보고 투약 시기와 상습 투약 여부를 알 수 있다.

국과수는 마약 중독 의심 사망사건 땐 독성농도 판별 등을 위해 혈액 시료도 감정에 사용한다. 지난 8월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경찰관도 혈액 감정까지 했다. 이 경찰관 혈액과 소변·모발 등에서 필로폰·케타민·엑스터시(MDMA)와 신종 마약인 메스케치논과 펜사이클리딘 유사체 성분 등이 검출됐다.

국과수 "마약 복용·투약 반드시 잡힌다" 

반면 수사현장에선 마약복용 의심자를 대상으로 소변 감정용 일회용 키트를 사용한다. 양성이 나오면 국과수가 정밀감정을 실시해 최종결과를 확정, 수사기관에 통보한다. 이재신 국과수 독성학과장은 “마약을 복용하거나 투약하면 반드시 적발된다”고 말했다.

국과수 본원내 '압수마약실험실' 모습. 김민욱기자

국과수 본원내 '압수마약실험실' 모습. 김민욱기자

국과수 독성학과 옆에는 압수마약실험실도 있다. 인가받은 소수 인원만 출입이 가능한 보안구역이다. 이곳에서는 마약에 남아있는 ‘화학지문’을 이용해 유통되는 마약이 같은 제품인지와 제조방법 등을 파악한다. 국과수 관계자는 “이는 마약프로파일링 감정과 같다”라며 “판정 결과는 마약 제조·판매책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신종 마약 감정과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 유통되는 신종 마약류는 1182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신종마약이 밀반입됐다. 2009년만 해도 마약류관리법상 292종이 규제대상이었다. 이후 13년간 매년 90여종이 생긴 셈이다. 여기다 메트암페타민과 대마 유통 시장이 커지면서 복용·투약 의심자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국과수는 지난해 한 해 동안 8만9000여건의 마약류를 감정했다. 최근 5년간 2배 증가한 수치다. 올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감정 건수가 최소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또 올해 1~6월까지 압수한 마약 물량은 571㎏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7㎏보다 51.5% 폭증했다.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현직 경찰관이 추락사한 '집단 마약 투약' 의혹 주요 피의자 문모씨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문모씨는 경찰관에게 마약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현직 경찰관이 추락사한 '집단 마약 투약' 의혹 주요 피의자 문모씨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문모씨는 경찰관에게 마약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증가하는 마약남용...국과수 마약 전담과 생길 듯 

게다가 마약 남용 연령까지 낮아지는 추세다. 국과수 등에 따르면 10·20대 마약 남용이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국과수 측은 "젊은 세대일수록 다양한 마약을 쉽게 접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신종 마약류 등장이나 남용 확산 속도보다 대응은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과수 본원에 아직 마약 전담과가 없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서울 등 지방 연구소 6곳도 마찬가지다. 본원은 독성학과 직원 7명이 마약 업무를 전담한다. 그나마 내년도 마약류 대응 범정부 예산안(602억원)에 국과수 마약대응과 설치를 위한 예산이 반영됐다. 예산안엔 펜타닐 등 신종 마약 검출 범위를 대폭 향상한 고해상도·초고감도 질량 분석기 3대 도입비도 포함됐다.

국과수 관계자는“신종 마약류 유통과 남용자가 증가하는 데 수사(검찰·경찰)와 감정(국과수), 규제(식품의약품안전처)가 3박자를 이뤄야 한다”며 “이를 위해 ‘범국가적 마약감정 통합관리체계’의 유기적인 공조·대응이 필요하고, 국과수에는 마약 전담 과를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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