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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영상 2800개…"하루 500만원 번다" 판치는 조폭 유튜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튜브 채널 '신단장tv'의 운영자 40대 A씨(맨 오른쪽)가 수원 남문파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과 지난달 8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폭 응징 자경단 콘텐트를 제작하는 그는 지난 26일 '조폭 지망생'으로 추정되는 20대 3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사진 '신단장tv' 유튜브 캡처

유튜브 채널 '신단장tv'의 운영자 40대 A씨(맨 오른쪽)가 수원 남문파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과 지난달 8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폭 응징 자경단 콘텐트를 제작하는 그는 지난 26일 '조폭 지망생'으로 추정되는 20대 3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사진 '신단장tv' 유튜브 캡처

“쳐봐. 이 XXX야”
지난달 8일 유튜브 채널 ‘신단장tv’에 ‘수원 남문파 조직원과 몸의 대화’란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선 셀카봉을 든 40대 유튜버 A씨가 조직폭력배로 추정되는 이들을 향해 욕설을 날렸다. 다툼은 순식간에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 A씨는 8월부터 조직폭력배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도발하는 콘텐트를 유튜브 채널에 게재해왔다.

그로부터 18일이 후인 지난달 26일. A씨는 안산 단원구의 한 식당에서 너클을 착용한 20대 남성 등 3명에게 피습당해 코뼈가 골절됐다. 범인들은 지난달 30일 경남 거창의 숙박업소에서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방송에서 거주 지역(안양)을 비하해 범행을 저질렀다. 조직과는 무관하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극적인 조폭 콘텐트를 만들려다 발생한 촌극”이라며 “일부러 갈등을 조장해 경찰이 출동하는 그림을 연출하는 유튜버도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조폭 관련 콘텐트가 범람하고 있다. 유튜브에 ‘#건달’로 해시태그 검색을 하면 관련 동영상이 2800여개가 노출된다. 아예 전직 조폭이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폭력조직 ‘20세기파’ 활동 전력이 있는 위모(36)씨의 유튜브 채널이 대표적이다. 위씨의 채널에는 ‘길거리에서 시비 걸렸을 때 이렇게 해라’ ‘테이저건 맞았을 때’ ‘맨주먹 싸움에서 가드 올리면’ 등의 제목으로 영상이 여러건 올라와 있다. 1월에는 ‘이제 주먹은 쓰지 않겠습니다’라는 영상을 올렸지만, 불과 며칠 뒤 위씨는 부산지법 형사3단독(송호철 판사)으로부터 특수상해·특수재물손괴 등 혐의로 징역 2년 10개월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경찰도 온라인 조폭 콘텐트가 범람하는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찰청은 범죄 무용담을 자랑하거나 조폭 계보를 설명하는 등 조폭 관련 콘텐트를 올리는 이들을 ‘조폭 유튜버’로 분류하고 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기준 조폭 유튜버 11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집계했다. 2019년 3명, 2020년 7명, 2021년 7명 등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난 1월 프로야구 선수 출신 위모(36)씨가 "이제 주먹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달 위씨는 특수상해 등 혐의로 도합 2년 1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사진 위모씨 유튜브 캡처

지난 1월 프로야구 선수 출신 위모(36)씨가 "이제 주먹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달 위씨는 특수상해 등 혐의로 도합 2년 1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사진 위모씨 유튜브 캡처

조폭 콘텐트가 범람하는 주된 원인은 금전적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A씨는 유튜브 영상에 후원 계좌를 노출하고, 라이브 방송 플랫폼에선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투네이션’(라이브 방송 후원 플랫폼)을 받아 수익을 확보한다. 앞서 언급된 전직 조폭 위모씨도 수감 직전까지 11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조폭 유튜버와 친분이 깊은 유튜버 B씨는 “많게는 하루 500만원 후원금을 받은 이도 있다”고 전했다.

‘조폭 자경단’을 자처하는 유튜버들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구독자 28만 명을 보유한 전 격투기 선수 엄모(29)씨는 조폭과의 스파링 등을 주 콘텐트로 내세운다. 엄씨는 6월 안양역 인근에서 “건달, 깡패, 양아치 참교육하겠다”며 조직폭력배와 싸움을 벌여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조폭 콘텐트 범람과 관련,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자극적인 콘텐트를 찾는 대중과 조회수 욕심을 내는 유튜버가 합작한 사회병리 현상”이라며 “공권력 불신과 겹쳐 사적 제재 콘텐트가 만연한데 결국 법치에 어긋나는 행동이고, 10·20대가 모방 범죄를 저지를 위험도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경단 활동에 대해서도 “기존 언론은 언론중재위원회 등의 규율을 받는 데 비해 유튜버 자경단은 신상 공개 등 내용이 오보로 판명 나도 제재 방법이 전무하다”(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자경단을 자처하는 전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 엄모(29)씨 등이 지난 6월 안양역 인근에서 조직폭력배와 충돌해 경찰이 출동했다. 사진 엄모씨 유튜브 캡처

자경단을 자처하는 전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 엄모(29)씨 등이 지난 6월 안양역 인근에서 조직폭력배와 충돌해 경찰이 출동했다. 사진 엄모씨 유튜브 캡처

대책으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 언급된다. 독일은 2020년 네트워크집행법을 개정해 위법 소지 게시물을 의무적으로 연방범죄수사청에 신고해야 한다. 또 위법 여부가 확실한 경우 24시간 이내에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사업자 책임을 강화했다. 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이를 어길 시 최대 5000만 유로(약 71억) 벌금형에 처하는 처벌 조항도 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유튜브나 라이브방송은 방송이 아닌 통신으로 분류가 돼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며 “독일처럼 SNS 사업자를 압박하는 입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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