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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컵 달군 '모자 게이트'는 돈 달라는 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의 패트릭 캔틀레이가 모자를 벗은 채 경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패트릭 캔틀레이가 모자를 벗은 채 경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추석 명절 기간인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치러진 유럽과 미국의 골프 대륙대항전 라이더컵은 모자 때문에 뜨거웠다.

세계 랭킹 5위인 미국의 패트릭 캔틀레이가 첫날부터 모자를 쓰지 않고 경기했는데 그가 탈모한 건 라이더컵에서 선수들에게 상금을 주지 않는 데 대한 항의 표시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스카이 스포츠는 “여러 출처에 의하면 미국 팀 룸이 분열되어 있으며 이는 주로 캔틀레이가 주도하고 있다. 그는 친구인 잰더 쇼플리와 함께 팀 룸의 별도 공간에 앉아 있다. 캔틀레이는 선수들이 라이더컵 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으며, 팀 모자 착용을 거부함으로써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를 본 유럽 관중은 대회 이틀째부터 캔틀레이를 볼 때마다 모자를 벗어 흔들고 “돈을 달라”라고 소리를 치며 조롱했다. 캔틀레이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오히려 경기를 더 잘했다. 둘째 날 포볼 경기 마지막 3개 홀에서 먼거리 버디 퍼트를 거푸 넣어 로리 매킬로이를 격침했다. 패색이 짙었던 미국은 이 승리로 역전우승 가능성을 살려 놨다.

트러블도 있었다. 캔틀레이의 캐디인 조 라바카는 유럽 관중의 조롱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모자를 돌리다가 상대인 매킬로이의 경기를 방해해 말다툼도 일어났다. 매킬로이는 또 다른 미국 캐디와 주차장에서 만나 언쟁을 벌였고 서양 미디어는 이를 ‘모자 게이트’로 썼다.

경기는 유럽이 16.5-11.5로 대승했다.

캔틀레이는 경기 내내 “맞는 모자가 없어서 쓰지 않은 것뿐”이라며 “스카이스포츠 보도는 완전히 틀렸다”고 했다.

그러나 보도가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맞는 모자가 없었다는 말이 황당하다.

캔틀레이는 젠더 쇼플리와 더불어 지난해 LIV 진출설이 파다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막판 사우디 오일머니를 거절했지만 돈 문제는 철저한 선수로 꼽힌다.

캔틀레이는 이번 라이더컵 갈라 디너와 미국팀의 로마 마르코 시모네 골프장 답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은 팀룸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풀스윙의 카메라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젠더 쇼플리와 더불어 이를 주도한 선수 중 하나다.

잰더 쇼플리의 아버지 스테판 쇼플리는 2일 영국 더 타임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확인했다.

그는 “미국 PGA와 라이더컵 유럽은 선수들의 지적 재산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데 정작 선수들은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승자가 200만 달러를 받고 패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재미있는 경쟁을 하게 될 것인가. 대회 주최 측이 장부를 공개하고 (선수들과) 협상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스테판 쇼플리는 넷플릭스 촬영 문제로 자기 아들과 캔틀레이가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위기를 겪었다고도 했다. 두 선수가 넷플릭스 촬영에 반대한 이유는 상금을 주지 않는 데 대한 항의, 혹은 다른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 선수들은 ‘미국 팀의 신성함’을 이유로 촬영팀의 팀 룸 접근을 거부했다. 발표는 만장일치라고 했으나 팀 내 이견이 있었으므로 미국 팀 룸이 갈라졌다는 보도도 틀린 것은 아니다.

라이더컵은 상금이 없는 친선대회로 시작됐다. 중계권료 등이 커졌는데 전통을 이유로 선수들은 돈을 받지 못한다. 데이비드 듀발,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등이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주최 측은 선수들이 정하는 자선단체에 기금을 내는 것으로 무마했다.

선수들이 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라이더컵이 상금이 아니라 애국심으로 경기하는 대회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많았다.

미국팀 선수들이 패배후 도열해 있다. 잰더 쇼플리(맨 왼쪽)과 패트릭 캔틀레이(오른쪽에서 두번째)는 모자를 쓰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미국팀 선수들이 패배후 도열해 있다. 잰더 쇼플리(맨 왼쪽)과 패트릭 캔틀레이(오른쪽에서 두번째)는 모자를 쓰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최종일 싱글 매치에는 미국 선수 4명이 모자를 쓰지 않았다. 캔틀리와 쇼플리, 콜린 모리카와, 저스틴 토마스다. 팬들에게 조롱당하는 캔틀리에 대한 연대로 볼 수도 있지만 라이더컵에서 돈을 달라고 주장하는 선수들의 명단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우디 석유 자본이 만든 LIV로 인해 선수들의 힘이 세졌다. 캔틀레이는 PGA 투어 선수 이사다. 이를 집고 넘어갈 것이 분명하다. 로리 매킬로이 등 다른 선수 이사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라이더컵에서 선수 상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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