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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화가 장욱진이 그린 이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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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요즘처럼 경복궁·덕수궁·창경궁 등 서울의 궁궐들이 ‘열일’하는 때도 없습니다. 그 중 ‘잠깐 걸을까’ 하며 찾았던 사람들이 뜻밖에 미술 전시까지 보게 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덕수궁입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장욱진(1917~1990) 회고전(내년 2월 12일까지)이 열리고 있습니다. 1~4관을 빼곡히 메운 작품 270여 점도 놀랍지만, 미술관에서 이런 인파를 본 게 언제였더라, 싶을 만큼 관람객으로 북적대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장욱진이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런데 그의 그림이 이렇게 친근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공책 혹은 손바닥만 한 캔버스 안에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나무 한두 그루, 해와 달, 집, 그 안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 까치와 소, 강아지도 보입니다. 단순하게 윤곽만 표현된 그것들은 아예 기호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최소한의 것으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담아내고자 했던 화가의 집요한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 속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닙니다. 그의 나무는 생명을 품는 우주이고, 해와 달은 만물을 비추는 빛, 영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사람과 까치, 강아지, 그리고 종종 뜬금없이 등장하는 물고기 역시 모두 ‘하나’로 얽힌 생명 공동체를 상징하고요. 그러고 보니 그의 캔버스에선 해와 달, 산과 강, 사람과 동물, 나무가 모두 평화로운 한 가족입니다.

장욱진, '까치',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x31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까치',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x31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의 그림이 친근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옛 우리 전통 민화의 특징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한 채 단순하게 표현된 산과 집이 그렇고, 나무와 동물, 그리고 사람이 위계 없이 공존하는 풍경이 그렇습니다. 너무도 소박해 보이지만, 만물이 안온해 보이는 그림 속 세계가 그가 그리는 이상향(理想鄕)임을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네모 공간(집), 그 안에 꽉 차게 앉아 마치 사진 찍듯이 정면을 바라보는 가족을 담아낸 것도 그런 맥락에서 매우 흥미로워 보입니다.

“나(딸)를 위해 매일 연필을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고” “가족이 오순도순 모이는 자리를 참 좋아했던”(장경수, 『내 아버지 장욱진』) 장욱진의 면모가 그림 안에 다 녹아 있습니다.

화가가 아내의 법명(法名)을 제목으로 그린 아내의 초상 ‘진진묘’(1970)를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기도하던 여사의 모습을 지켜보다 영감을 얻어 간결한 선으로만 그린 것인데요, 이게 초상화라기보다 보살상 그 자체입니다. 서울 혜화동에서 서점 동양서림을 운영하며 화가 남편을 뒷바라지해온 삶이 곧 수행의 과정이었음을 응축해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分身)은 없다”고 한 화가가 세상을 떠나고 벌써 30여 년. 우리는 지금 그의 분신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