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도 소록도 기억했다…파란 눈 '한센인의 어머니' 선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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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의 어머니’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의 선종 소식에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마가렛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평생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해온 인물이다. 지난달 29일 고향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한 병원에서 골절수술 중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소록도에서 40여년 간 봉사했던 '소록도 천사' 마가렛 피사렉(88) 간호사가 지난달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각) 오스트리아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사진은 2017년 9월 촬영한 마가렛의 모습. [연합뉴스]

소록도에서 40여년 간 봉사했던 '소록도 천사' 마가렛 피사렉(88) 간호사가 지난달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각) 오스트리아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사진은 2017년 9월 촬영한 마가렛의 모습. [연합뉴스]

소록도 한센인들, 한 달간 추모키로 

소록도성당은 2일 오전 7시 30분쯤 한센인 60여명과 함께 고인을 위한 연도(煉禱·위령기도)를 올리고 묵주기도를 진행했다. 고령 한센인들은 마가렛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 성당은 마가렛과 그의 동료 마리안느 스퇴거(89) 두 간호사가 구호단체를 통해 소록도에 온 1962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신자 대부분은 한센인이다.

과거 소록도에 격리 수용된 한센인들의 처지는 너무도 열악했다. 치료약은 물론 의식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파란눈’의 두 간호사는 환자들에게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건네고 주치약을 투약했다. 짓무른 환자들의 손발 소독도 맡았다. 소록도 밖으로 강제 퇴원된 이들에겐 주변에 도움을 청해 정착금도 마련해줬다. 소록도 내 한센인 치료를 위한 결핵이나 맹인 병동, 소아병원인 영아원 등을 짓는 데도 힘을 보탰다. ‘한센인의 어머니’ ‘소록도 천사’로 평가받았다. 건강이 허락지 않아 2005년 11월 섬을 떠날 땐 “부담 주기 싫다”며 편지 한 통만 남겨둔 채 조용히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전남 고흥군 도양면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연수원' 기념관에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고흥군]

전남 고흥군 도양면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연수원' 기념관에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고흥군]

나눔연수원에도 추모발길 이어져

소록도성당은 이런 마가렛 간호사를 기리려 10월 한 달을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 성당 관계자는 “우리 모두가 마가렛 수녀님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가렛과 소록도를 이어준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4일 광주 임동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열 예정이다. 이 교구의 김연준 신부는 2017년 9월 마가렛을 만나려 오스트리아를 찾았던 적이 있다. 당시 마가렛은 단기 치매 증세로 며칠 전 일도 잊어버릴 때가 잦았지만, 소록도에서의 추억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록도로 향하는 길목 격인 고흥군 도양읍엔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연수원’이 있다. 두 간호사의 희생정신을 기리려 2019년 지었다. 전시관과 강의실·생활관·식당 등을 갖췄는데 추석 명절 연휴 연수원을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마가렛 간호사의 숭고한 삶을 기렸다. 연수원엔 추모 현수막이 길게 걸렸다. ‘소록도의 천사 故(고) 마가렛 피사렉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과거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보는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 간호사. [연합뉴스]

과거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보는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 간호사. [연합뉴스]

간호협회 "이타적인 삶 사셔" 

추모는 소록도, 고흥군 뿐아니다. 대한간호협회는 2일 ‘이 세상 비추는 따뜻한 별이 되신 선생님을 기억합니다’란 추모 글을 통해 “선생님께서 선종 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애달픈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면서 “한센인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며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사셨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의 고귀했던 헌신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고 적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애도문을 내고 “40여년 동안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인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셨고 한센인 한 분 한 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며 진심으로 사랑과 나눔을 베풀어 주셨다”고 추도했다.

한편 나눔연수원은 제2의 마가렛과 마리안느를 키우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기숙사와 급식, 교사양성 등을 지원하는 교육사업과 방문 의료봉사, 의약품 지원사업 등도 병행하고 있다. 마가렛과 마리안느 1962년 구호단체를 통해 소록도 파견 당시 공식 근무 기간은 5년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소록도에 남아 2005년까지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한센인들을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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