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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 못 해도 괜찮아" 수억 뛴 '압여목성' 막차까지 탄다, 왜

중앙일보

입력

현대아파트 등 서울 압구정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현대아파트 등 서울 압구정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최근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양천구 목동, 성동구 성수동 등 이른바 '압여목성'에서 최고가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일 압구정동 미성1차(1982년 준공) 전용면적 153㎡가 53억원(11층)에 역대 최고가로 거래됐다. 같은 면적이 지난 6월 44억원(2층)에 거래됐는데, 불과 3개월여 만에 9억원이 뛴 것이다. 신현대9·11·12차(1982년) 전용 111㎡(36평형)도 지난 8일 41억5000만원(10층)에 이어 5일 뒤인 13일 43억5000만원(9층)에 거래되며 연이어 최고가를 경신했다. 압구정동에서만 지난달 이후 13건의 최고가 거래가 신고됐다. 전체 거래 21건 가운데 61.9%에 해당하는 수치다.

4개월 만에 4억6000만원 뛴 여의도 삼부 

여의도동 삼부(1975년) 전용 92㎡도 지난 1일 22억6000만원(11층)에 거래되며 지난달 22억원(8층)보다 6000만원이 올랐다. 이 아파트 해당 면적은 지난 5월 18억원(12층)에 손바뀜한 이후 6건의 거래가 더 있었는데,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4개월 여만에 4억6000만원 상승했다.

양천구 목동과 신정동에 걸쳐 있는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에서도 이달 들어 7건의 최고가 거래가 이뤄졌다. 특히 목동신시가지5단지 전용 142㎡는 지난 21일 32억원(3층)에 거래되며 지난달 23일 30억원(8층)보다 2억원이 더 올라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성수동1가 동아(1983년) 전용 52㎡ 역시 지난 4일 역대 최고가인 13억9000만원(4층)에 거래됐다.

서울시 토지거래허가구역 4곳 지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서울시 토지거래허가구역 4곳 지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고가 거래가 쏟아진 ‘압여목성’은 재건축·재개발 초기 단계인 지역으로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공통점이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서울시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일정 면적 이상 주택·상가·토지를 거래할 때 시장·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매수자는 잔금 납입일로부터 4개월 이내 입주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실거주 목적으로만 거래를 허용하기 때문에 전·월세를 낀 갭투자가 차단된다.

부동산 침체기였던 지난해에는 도입 취지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아파트 거래가 줄고,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투자 수요의 유입 차단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 정부가 안전진단 등 재건축 규제를 일부 완화했고,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등에 따라 재건축 추진이 급물살을 타며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재건축 붐에 2년 실거주 의무도 무력화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진행단계에서 안전진단 등 초기 단계에서 가격 상승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인데, 규제가 완화하면서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라며 “재건축 아파트 투자자 입장에서 2년 실거주 의무는 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압구정동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재건축 추진에 속도가 붙으면서 매물이 줄고, 호가가 많이 오른 상황”이라며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막차라도 타겠다’는 심정으로 높은 호가에 계약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동산플랫폼 직방이 서울 신고가 거래사례 중 직전 거래가보다 많이 오른 순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상위 20개 사례 중 9곳이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아파트로 나타났다. 또 다른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대치동 등에서도 거래가 늘고 최고가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27일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는 올해만 101건의 거래가 이뤄졌으며, 가격도 8개월 만에 약 6억원이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지거래허가구역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제도의 도입 취지와 무색하게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산권 침해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강남구의회는 지난 7일 본회의에서 ‘강남구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해당 지역민이 감당할 과도한 재산권 침해를 막아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가, 오피스 거래도 막는 '과잉규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 부동산 중개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아파트 투기 억제를 위해 제도가 도입됐지만, 상가, 오피스 등의 거래에도 그대로 적용돼 거래가 급속도로 위축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도 등장했다.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일부 자산가들은 실거주 의무를 회피 위해 20평형대 재건축 아파트를 매수한 뒤 주소만 옮겨놓고, 아예 빈집으로 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제도 도입의 실익이 크지 않고, 재산권 침해 등 ‘과잉규제’ 논란이 있는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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