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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 종이가방으로 때리면 특수폭행? 흉기 기준은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대법원에서 2L짜리 빈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고, 이걸로 때리는 건 ‘특수상해’가 아닌 그냥 ‘상해’라는 판결이 나왔다. 1심에선 생수가 가득 찬 페트병으로 때렸다고 보고 특수상해로 판단한 사건이었다.

‘위험한 물건’을 썼다고 인정되면, 죄명에 ‘특수’가 붙는다. 특수폭행, 특수공무방해, 특수협박, 특수주거침입, 특수손괴, 특수강제추행 등이다. ‘특수’가 붙으면 형량이 무거워진다. 폭행죄는 최대 징역 2년이지만, 특수폭행죄는 최대 5년으로 늘어나는 식이다.

꽉 찼으면 위험, 비었으면 안 위험…절반 들었다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막걸리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막걸리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형사 재판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이란, 물건 자체로 위험한 것(예:흉기)뿐 아니라 위험한 용도로 쓰려면 쓸 수 있는 것(예: 유리병·자동차 등)을 포함한다. 다만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은 통상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법정에서 ‘위험한 물건’이 맞는지 다투는 경우가 많다.

막걸리가 절반 정도 들어 있는 페트병으로 초등학생의 눈가와 머리를 때린 사건에서 피고인은 “막걸리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람의 생명·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고, 실제로 피해자의 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됐다”며 특수상해를 인정했다. 동종범죄 집행유예 기간 중 벌어진 일이라 실형 1년이 나왔다(서울서부지법, 지난해 8월 선고).

버리면 재활용, 휘두르면 위험…플라스틱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쌓인 다양한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쌓인 다양한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가볍고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특성 때문에 플라스틱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두께나 강도에 따라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빈 페트병 정도는 대법원도 “피해자나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물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택시 안에 있던 플라스틱 통으로 택시기사의 눈썹 부위를 내리친 사건에서 울산지법은 “플라스틱 통이 상당히 크고 단단하였으므로 피해자에게 중한 상해를 가할 위험성이 있었다”며 지난 7월 특수상해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밖에도 목욕탕에서 시비가 붙어 다른 손님의 이마를 내리치는 데 쓴 플라스틱 바가지, 회사 야외 흡연장에서 ‘왜 인사를 안 하느냐’며 동료를 때리는 데 쓴 50㎝짜리 플라스틱 막대 등도 법원에서 ‘위험한 물건’으로 보고 각각 특수폭행·특수상해 혐의를 인정했다(부산서부지원·대구김천지원, 모두 올해 6월 선고).

종이로도 때리지 말라…쇼핑백·신문지도?

가로 약 31.1cm, 세로 약 7.9cm, 높이 7.9cm, 무게 약 0.6kg의 에르메스 애플워치 박스가 든 종이가방은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사진 애플

가로 약 31.1cm, 세로 약 7.9cm, 높이 7.9cm, 무게 약 0.6kg의 에르메스 애플워치 박스가 든 종이가방은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사진 애플

연인과 다투다 종이가방을 집어던졌는데 특수폭행으로 벌금 100만원이 선고된 사례가 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므로 종이가방이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지난해 4월 “종이가방에는 무게 약 0.6㎏에 달하는 애플워치 상자가 들어 있었고, 종이가방에 맞은 피해자가 얼굴에 골절상을 입었으므로, 이 사건 종이가방은 상대방 또는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고 했다.

‘신문지를 여러 장 겹쳐 만든 몽둥이’가 위험한 물건인지 다퉜으나, 일단 아니라고 본 사례도 있다. “신문지를 돌돌 말고 테이프로 전체를 감아 딱딱하게 만든 것으로, 강아지를 부르거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바닥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용도(딸의 법정 증언)”인데 배우자를 때리는 데 썼다. 검찰은 특수폭행으로 기소해 항소심까지 위험한 물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의 신문지 몽둥이를 수사과정에서 압수하지 않은 바람에 폭행만 인정됐다. 대구지법은 올해 2월 “두께나 강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제출되어 있지 않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론 위험한 물건이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작아도 단단하면 던질 때 위험…돌·진흙

방울토마토 크기의 돌도 던지면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연합뉴스

방울토마토 크기의 돌도 던지면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연합뉴스

밭일하던 사람에게 돌을 던져 특수상해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은 “방울토마토 정도의 크기에 불과해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도 돌이 크다곤 안 했다. 공소장에 ‘방울토마토 정도’ 부터 ‘가로5㎝, 세로3.5㎝’ 사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 돌을 던진 방법이 문제였다. 대구지법은 지난해 11월 “돌은 약 15m 정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피해자의 정수리 부분에 맞았고, 피해자는 돌에 맞아 약 2cm 정도 이마가 찢어졌으며 피가 콧등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였고 현재까지도 흉터가 남아있다”며 특수상해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길가에 있던 진흙덩어리로 배우자 머리를 때린 사건에서는 ‘때릴 때 진흙이 부서졌는지’가 쟁점이 됐다. 피고인은 “마른 진흙덩어리로 때리자 흙가루가 떨어지며 크기가 조금 작아지긴 했으나 덩어리가 부서지진 않았다”고 했고, 피해자는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의 누런색 돌로 때려 머리가 부어오르고 멍이 들었다”고 했다. 수원지법은 “머리를 내리쳐도 부서지지 아니하고 타격 부위에 멍이 생기게 할 정도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던 상태의 진흙덩어리는 위험한 물건”이라며 특수폭행을 인정했다(2021년 9월 선고).

어떻게 썼길래…‘위험한’ 빗·집게·반지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다양한 큐빅 반지 이미지. 구글 화면 캡쳐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다양한 큐빅 반지 이미지. 구글 화면 캡쳐

꼬리빗도 목과 얼굴을 향해 겨누고 “눈알 뽑는다, xx같은 xx, 죽여버린다”며 휘두르면 ’위험한 물건’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이 같은 언행을 해 특수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부산지법, 지난해 8월 선고).

교도소에서 빨래집게로 다른 재소자의 유두와 성기 부위를 잡아 비튼 사건은 특수강제추행으로 인정됐다.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은 빨래집게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주장해봤으나, 대전지법 공주지원은 피나 고름이 나올 정도로 비틀었다면 “그 사용방법에 비추어 피해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판단했다.

큐빅 반지를 낀 채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것이 ‘특수상해’인지 판단하기 위해 판사가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건도 있다. “반지는 중앙에 하트 모양의 큰 큐빅이 있고 물방울 모양의 중간 큐빅 3개와 원 모양의 작은 큐빅 11개가 큰 큐빅을 둘러싸는 모양이며, 피고인은 왼손 검지에 1개, 중지에 2개를 착용한 채 주먹으로 가격해 피해자의 눈썹 위 피부가 찢어지고 많은 양의 피가 흘렀다”면서 위험한 물건이란 결론을 내렸다(의정부지법, 지난해 1월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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