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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영의 문화난장

은은한데 화려하다…‘모순의 미’ 줄불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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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추석을 앞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은 분주했다. 오는 30일 이곳에선 ‘하회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진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면서도 관람객이 너무 몰려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지난 22일 만난 류열하 안동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은 “경찰과 시청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마을 내 주차공간 상황을 봐서 차량 진입을 막는 교통 통제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뱃놀이 결합한 양반 풍류 문화
RM 뮤비, 드라마 ‘악귀’에 등장
30일 안동 하회마을서 재현
국가 무형문화재 추진 움직임

하회선유줄불놀이 현장에서 촬영한 드라마 ‘악귀’의 마지막 장면. [사진 SBS]

하회선유줄불놀이 현장에서 촬영한 드라마 ‘악귀’의 마지막 장면. [사진 SBS]

몇 해 전만 해도 ‘쥐불놀이’의 오기(誤記)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곤 했던 ‘줄불놀이’가 주목받는 관광상품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2월 방탄소년단 RM의 솔로곡 ‘들꽃놀이’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데 이어, 지난 7월 종영한 드라마 ‘악귀’(SBS)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줄불놀이가 장식했다. 하늘에 매달린 줄에서 소리 없이 흩날리는 불꽃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이 장관이 실제 재현되는 곳으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려 도로가 마비되고 인터넷이 끊기는 등 대혼란이 발생, 결국 군수가 공식 사과까지 한 경남 함안군 ‘낙화놀이’도 줄불놀이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서야 ‘K불꽃놀이’로 불리며 화제가 되고 있지만, 줄불놀이는 조선시대 하회마을과 함안뿐 아니라 전북 무주, 경기 여주, 함북 북청 등 전국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즐겼던 양반들의 놀이였다. 일제강점기 그 맥이 끊겼다가 1990년대 이후 각 마을 주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하나둘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지역에 따라 놀이 방식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숯가루를 한지로 싸서 만든 ‘낙화봉’을 높게 걸린 줄에 매단 뒤 불을 붙여 거기에서 떨어지는 불꽃을 감상한다는 얼개는 같다. 양반들의 뱃놀이와 결합돼 있어 강이나 연못 위에서 펼쳐지는데, 물 위에 비쳐 반짝이는 불꽃까지 아름다움에 한몫한다.

하회마을 주민들의 기억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도 세 차례 정도 벌어졌던 줄불놀이는 태평양 전쟁 이후 중단됐고, 1948년 정부 수립을 기념해 다시 열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용과 인력 문제 등으로 일상 행사로 복원하긴 어려웠다. 1968년과 74년, 81년 등 뜨문뜨문 재현됐고, 본격적인 전승 작업은 1997년부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부대 행사로 자리 잡으며 시작됐다.

지난 22일 안동 하회마을 주민들이 숯·쑥가루 등을 한지에 말아 줄불놀이용 ‘낙화봉’을 만들고 있다. 이지영 기자

지난 22일 안동 하회마을 주민들이 숯·쑥가루 등을 한지에 말아 줄불놀이용 ‘낙화봉’을 만들고 있다. 이지영 기자

류한철 안동하회마을보존회 사무국장이 전하는 복원 과정은 이렇다.

“낙화봉 제조법이나 줄 매다는 방법 등에 대한 기록이 없다. 숯이 들어간다, 쑥이 들어간다 등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지해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숯이라도 참나무 숯은 안되더라. 하회마을에 많이 자라는 뽕나무로 직접 숯을 구워 사용한다. 심지 역할을 하는 쑥가루도 낙화봉에 넣는데, 이 쑥 역시 마을 바깥에서 자란 쑥은 효과가 없었다. 숯가루·쑥가루 입자는 너무 굵어도, 너무 고와도 좋지 않다. 직경 2㎜ 정도가 딱 맞았다. 소금도 넣는다. 간수를 빼고 솥에 볶아서 물기를 날린 다음 사용한다. 이렇게 저렇게 낙화봉을 만들어 50개씩 매달아 놓고 2년 정도 실험해본 끝에 지금의 제조법을 찾았다.”

실제 하회선유줄불놀이에선 하회마을 만송정 솔밭에서 강 건너편 부용대까지 230m 줄을 다섯 개 걸어두고 줄마다 낙화봉을 300개씩 매단다. 총 1500개 낙화봉의 불꽃이 바람에 흩날려 내려오는 동안 부용대 절벽 아래로 불붙인 ‘솟갑단’(소나무 가지 묶음)을 던지는 ‘투화(投火)’와 강물에 달걀불을 띄우는 ‘연화(蓮火)’가 함께 진행된다. 그 극한의 아름다움 속으로 배가 유유히 지나고, 배 위에서 선비들이 시를 읊는다. 양반 풍류 문화의 정수다.

줄불놀이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한양명 안동대 교수는 『물과 불의 축제』(2009)에서 하회줄불놀이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충격”이라고 적었다.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모순의 불꽃”이란 것이다. 화약을 사용하는 여느 불꽃놀이가 요란하고 순간적이라면 줄불놀이는 1시간 30분∼2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고요한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줄불놀이는 중국·일본 등 다른 나라에선 발견되지 않은 우리만의 전통 놀이다.

아직 전국의 어느 줄불놀이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 최근 무주군이 현재 전북 무형문화재인 안성낙화놀이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고, 하회마을 측도 올해 안에 줄불놀이보존회를 만들어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역색보다 민족성이 더 두드러진 놀이인 만큼 각 지자체가 연대해 종목 지정을 끌어내는 방안도 궁리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