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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핵개인 ‘영웅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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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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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를 아시나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임영웅씨의 팬덤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스타의 성장 과정과 함께한 이들의 사랑은 자발적 팬덤을 구성하여 그의 활동을 체계 있게 응원합니다. 단순한 사랑을 넘어 기부와 선행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합니다.

올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결집한 화력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동시 접속자 40만 명은 1분 이내에 티켓을 매진시켰습니다. 최대 1만5000명을 수용하는 장소에서 엿새간 진행되어 공고한 팬덤을 보여주었습니다. 10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해달라는 댓글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팬덤 이름처럼 이제 ‘영웅시대’가 펼쳐지는 듯합니다.

가수 임영웅의 자발적 팬덤
나이 잊고 티케팅 기법 배우기
새 규칙 익히며 현 사회와 호흡
자신의 취향 가꾸는 ‘핵개인들’

빅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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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케팅 역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온라인에 서툰 장년층을 위해 자녀분들이 가세한 것입니다. 수강 신청에 단련된 자녀들의 활약 속, 상대적으로 손이 느린 장년팬들이 불리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블로그에는 “자녀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티케팅을 해보는 것”을 알려주는 포스트가 게시되며 본인의 취향을 즐기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독려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행위는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적응해나갈 수 있다면, 누구든 사회 변화 속 새로운 혜택을 누릴 것입니다.

올봄 더욱 흥미로운 일이 관찰되었습니다. 임영웅씨가 K리그에서 시축하자 응원차 축구장을 찾으려는 팬들에게 자발적 규칙이 공지되었습니다. 먼저 응원색인 하늘색 옷은 원정팀의 팀컬러와 겹치니 입지 말아 달라 했습니다. 또 원정석과 서포터즈 석은 축구팬을 위해 양보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시축이 끝나도 경기 종료까지 자리를 뜨지 말아 달라는 말로 관람 매너를 부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다음의 규칙, ‘먹을 것 싸 오지 말라’는 부탁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먹을 것 싸 오는 것 말입니다. 예전 부모님과 함께 뷔페식당에 갔다 남은 음식을 싸 오시려 해서 실랑이를 벌였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려왔습니다. 극장이라도 간다면 고구마를 삶아 숨겨라도 들어가라는 말씀에 부끄러워하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보릿고개로 굶주림을 겪었던 때 기억이 선명하고, 밖에서 사 먹는 것은 낭비로 여겨지던 시절의 정서는 지금도 그분들에게 습관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음식 싸 오기’를 자제해 달라는 부탁에, 모든 팬들은 일사불란하게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새로운 사회의 규칙에 익숙해진 분들은, 앞으로 다른 콘서트와 행사에도 자연스레 참여하실 듯합니다. 이 일화는 바뀐 사회에 맞추어 본인의 삶의 범주와 형식을 현행화한 아름다운 예제로 알려져, 미디어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중장년 중 많은 분은 새로운 시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지금껏 없었을 뿐, 기회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배우고 적응할 수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른 사회 변화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분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할 것입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고속철 열차 티켓을 구하지 못해 직접 역으로 와서 현금으로 사려 해도 이미 매진으로 허탈해진 노인과 같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분들처럼 말입니다. ‘영웅시대’ 분들은 연대를 통해 자발적으로 배움과 가르침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응집시키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뇌과학의 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는 31세 이후는 좀처럼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 합니다.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를 열어보시면 그곳에 여러분의 나이가 고스란히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안정감과 관성 때문에라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완고하다는 사실에 당혹감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웅시대’ 분들은 이 논문에 따르면 30세 이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새로운 애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세상과 공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로 되돌아간 분들은 새로운 행복감을 느끼실 듯합니다.

사회가 분화하며 우리는 더 잘게 쪼개지고, 흩어지고, 모두 홀로 서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주체적 개인을 핵개인이라 정의합니다. 애호로 젊어지고 연대로 결속한 ‘영웅시대’의 모든 분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자녀보다 더 젊게 살며 스스로를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분들은 이제 자녀들에게 ‘모셔지는’ 효도를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돌보고 함께 적응하며 세대와 관계없이 수많은 분이 늘어나며 각자는 새로운 개인, ‘핵개인’으로 거듭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