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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절대 못해? 美제철소 보고 달라졌다, 이 기업의 도전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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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포스코 탄소중립 담당 김희 상무 인터뷰

만약 자동차나 지하철이 없다면? 혹은 아파트나 빌라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철이 등장하면서 수천 년 간 석기시대가 저물고, 인류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됐습니다. 이후 산업화 시대 산업의 쌀로 불리며 자동차나 선박 등 다른 업의 근간이 된 철강. 그런데 지금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탄소중립이 전 세계의 과제가 돼버린 지금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주범이 돼버렸든요. 그렇다고 강도가 높고 가공성이 뛰어난 철을 대체할 소재도 없는 상황.

전 지구적 난제를 우리나라 철강 1위 기업 포스코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습니다. 브랜드와 떠나는 설레는 여정 비크닉,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 사무실에서 탄소 중립 담당 김희(56) 상무를 만나 탄소 중립 시대 생존 전략에 대해 물어봤어요.

포스코 김희 탄소중립 상무. 사진 포스코

포스코 김희 탄소중립 상무. 사진 포스코

적응하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 탄소 중립 전쟁

지난해 CEO 직속 탄소 중립 담당 임원으로 임명된 김 상무는 현재 탄소 중립 추진을 위한 전사 전략을 짜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해요. 기술 연구개발은 물론 원료, 에너지, 마케팅 등 전 분야의 탄소중립 이행 과정을 점검하고 이슈를 발굴해 조정하고 있죠. 여성 공채 1기이자 여성 최초 공장장을 지낸 그는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용감한 개척자로 통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특명을 받았을 때 “막막했다”고 합니다.

“자연에 있는 철광석이 단단한 철이 되기 위해서는 산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산화탄소가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철 생산에서 탄소가 나오는 것은 구조적으로, 태생적으로 필연적이에요. 이게 환경에 안 좋다고 하니 줄여야겠지만 정말 힘든 일이겠구나 싶었죠.”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선진 제철소를 방문하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요. 해외 철강 기업들은 이미 탄소 중립 추진 목표를 발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설비 투자 계획을 갖고 있는 데다, 다양한 제품 마케팅 활동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탄소 중립으로 산업 표준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표준을 만드는 자가 되면 승자이고, 뒤따라가면 패자가 되겠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받은 그는 지금 회사에서 탄소 중립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고 해요.

 “미국은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철강산업을 지원한다 공표했는데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어요. 현실이 정말 냉엄하구나, 지금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크게 뒤처지겠구나 싶었어요. 당장 유럽도 탄소 국경조정제도(CBAM) 등으로 탄소 세금을 부여하며 탄소배출을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환경에 좋은 일이라는 명분으로요. 큰일이다 싶었죠.”

발상의 전환, 선점하는 자가 시장을 갖는다  

실제 선진국은 정부가 나서서 탄소중립을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오히려 이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이상 극복해야 할 과제나 위협이 아니라 기회로 보고 있는 거죠.

일본의 경우 2년 전부터 녹색 혁신기금 2조엔을 조성, 저탄소 철강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상용 설비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관련 법안도 재정비했다고 해요. 친환경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큰 과제 앞에서 기업이 단독으로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겠다는 건데요.

이러한 정부의 든든한 지원 속에 글로벌 철강사들은 탈 탄소 설비 투자를 발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1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은 정부로부터 약 8700억원을 지원받아 도파스코 제철소에 탈 탄소 설비를 투자하기로 했고요. 독일 대형 철강사인 잘츠기터(Salzgitter)도 정부로부터 수소환원 제철 시험설비 투자비의 50%인 1.4조원을 지원받았다고 해요. 수소환원 제철의 선두 주자 스웨덴의 SSAB는 하이브리트 HYBRIT 합작 프로젝트에 약 9700억원의 EU 혁신기금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감한 기업과 이를 지원하는 대담한 정부의 정책 지원 사례를 볼 때면 김 상무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합니다. 그는 “철강은 국가 제조업의 근간이기 때문에 탄소 중립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기업 경쟁력을 위한 방법일 뿐 아니라 한국 제조업 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문제”라며 “정부가 연구개발 지원 뿐만 아니라 실증 상용 설비 투자비 지원,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포스코의 미래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 포스코

포스코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냐고요? 이산화탄소 절감이 기업 생존과 직결된 포스코는 누구보다도 절박하고, 치열하게 탄소 중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2020년 12월 아시아 철강사 최초로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인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을 수립한 상태입니다. 지난해에는 탄소중립 전략을 담당하는 조직인 탄소중립전략 그룹을 발족하고, 대표 이사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탄소중립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닛'이라는 탄소중립 브랜드도 선보였는데요. 철강 생산부터 고객의 철강 사용·폐기까지 철강의 전 생애에서 탄소 발자국 저감에 기여하겠다고 해요.

포스코는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을 대표하는 마스터브랜드 ‘그리닛(Greenate)’을 론칭했다. 왼쪽부터 세아제강 이휘령 부회장, 포스코홀딩스 전중선 사장, 현대중공업 임영호 부사장,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 포스코 김학동 부회장, 현대자동차 이규석 부사장, 포스코 정탁 사장.

포스코는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을 대표하는 마스터브랜드 ‘그리닛(Greenate)’을 론칭했다. 왼쪽부터 세아제강 이휘령 부회장, 포스코홀딩스 전중선 사장, 현대중공업 임영호 부사장,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 포스코 김학동 부회장, 현대자동차 이규석 부사장, 포스코 정탁 사장.

철 생산 공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포스코가 보유한 파이넥스(FINEX)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수소환원 제철인 하이렉스 (HyREX)가 대표적이죠.

수소환원 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H)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을 말하는데요.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철광석과 화학 반응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수소는 물이 발생해서 친환경적이죠. 포스코의 하이렉스는 기존 수소환원기술보다 열보상 등 기술적인 구현이 용이하고, 풍부한 적철분광을 전처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는 말해요. 기존 공정을 대체해 설비를 전환하고 유동환원로, 전기로 등 수소환원 제철 신규 설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그는 “포스코가 WSD(World Seel Dynamics)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3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가격경쟁력인데, 수소 제조 단가가 높아지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어요.

“저도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왜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가 흔들릴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탄소중립은 철기시대가 새롭게 진화하는 거대한 시대적 물결이에요. 이 적응 비용을 개별 기업만 부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물론 저희도 열심히 할 건데요. 정부도 도와줘야 하고, 국가간 연대도 필요해요. 위기가 아닌 기회라는 연대 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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