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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현의 시선

의사들, 시놉티콘 수술실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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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사회부디렉터

김승현 사회부디렉터

“그게 누구든 다 찾아냅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흔적을….”

히어로 드라마 ‘무빙’에 나오는 권력의 하수인은 한껏 거드름을 피운다. 그는 탁월한 수탐(搜探) 능력으로 선한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간다. 개인의 삶을 무참히 짓밟는 감시와 추적은 드라마 속 초능력자들에게도 공포다. 예로부터 권력에서 파생한 감시(監視)는 다시 그 권력을 강화했다.

수술실 CCTV는 의료계 안전핀
환자는 의사의 볼모가 아니야
쌍방향 감시로 신뢰 회복하길

감시의 힘은 영국의 법철학자 제러미 벤담(1748~1832)이 고안한 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에서 구조화됐다. ‘모두(pan) 본다(optic)’는 의미가 합성된 이름의 감옥은 원 모양의 건축물이다. 중심에 있는 감시탑에서 바깥쪽 수용실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감시자가 있는 중심은 어두워서 피감시자(죄수)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늘 감시받는다고 생각하는 죄수들은 자발적으로 규율에 따른다.

공리주의자였던 벤담은 이 구조가 감옥뿐 아니라 병원과 공장 등에도 적용될 수 있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 세기쯤 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 구조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권력 작용을 근대 사회의 담론으로 포착했다.

1800년대에 등장한 파놉티콘이 현대엔 폐쇄회로(Closed Circuit·CC) TV에 비유되곤 한다. 200여 년 뒤에도 감시와 권력의 역학은 작동 중이다. 지난 25일부터 시행된 ‘수술실 CCTV 의무화’ 논란을 보며 파놉티콘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의사 단체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수술실에 켜진 카메라는 과연 의사를 죄수로 만들 것인가.

개정 의료법의 골자는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 시엔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예외(응급이나 위험한 수술, 수련의 교육을 저해하는 경우 등)가 있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국회와 정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인터넷에 공개된 입법 취지엔 ‘의료 과실이나 범죄의 객관적 증거 확보’를 위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수술 과정에서의 의료사고, 비자격자에 의한 대리 수술, 마취된 환자에 대한 성범죄 등 의료인의 불법행위가 실재했기 때문이다. 2016년엔 권대희씨(당시 25세)가 안면윤곽 수술을 받다가 과다 출혈 상태로 방치돼 숨졌다. 유족들이 약 5년간 진실 찾기를 하는 과정에서 CCTV 영상은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외부와 격리된 수술실에서 뭔가 잘못된 일이 벌어졌을 때, 최소한의 안전핀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수술실 안의 절대권력에서 갑자기 파놉티콘의 죄수가 된 의사들의 불쾌감은 이해된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의료인이 직업수행의 자유와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하게 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계속되는 항변은 점점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듯하다.

의사 단체는 수술실 CCTV가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훼손하고 의료진의 집중력 저하, 과도한 긴장을 부른다며 반대한다. 의사의 수술 기술 노출, 환자 접촉이 성범죄로 오인되는 상황, 위험한 치료를 피하는 ‘방어 진료’까지 걱정한다. “환자들은 건강을 회복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의사들은 외과를 기피하려는 현상이 초래될 것”이라는 경고엔 말문이 막힌다.

의사들을 힘들게 하는 의료 붕괴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복잡다기한 사회 병리적 현상 앞에서 전문가들은 늘 환자를 볼모로 잡았다. 그런데 이젠 환자가 파놉티콘의 감시탑에 서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의사는 늘 환자 위에 군림했다. 한국의 환자와 보호자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형 병원 로비의 북새통을 헤매고 있다. 그들은 왜 서울까지 올라와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필수의료 체계는 왜 붕괴 직전인지, 의대 정원은 왜 18년째 동결인지, 소아청소년과는 왜 천대받는지, 구급차는 왜 뺑뺑이를 도는지, 의사와 간호사는 왜 싸우는지 영문을 모른다.

의료계의 갈등과 위기 때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로 환자와 국민을 정치 공학으로 끌어들이려는 습성은 사라져야 한다. 환자가 더는 볼모가 아니라 감시자임을 인지해야 한다. 수술실 CCTV는 역(逆)의 파놉티콘, 즉 다수 약자가 소수 권력자를 감시하는 ‘시놉티콘(synopticon)’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 그 쌍방향 감시의 구조에서, 권력이 아닌 실력이, 기득권이 아닌 소명의식이 포착될 때 의료인에 대한 신뢰도 회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