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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정부 “임금체불 엄단” 외쳐도…사업주 698명 수년째 버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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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5일 임금체불 근절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5일 임금체불 근절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5일 공동 담화문을 통해 매년 1조원 넘게 발생하는 임금체불을 ‘반사회적 범죄’로 규정하며 엄벌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정부 홈페이지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악성·상습 체불 사업주 698명의 명단은 현행 제도상 한계점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용부는 매년 정기적으로 체불 사업주 명단을 공개한다. 임금 등 체불로 2회 이상 유죄가 확정되고, 체불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경우에 대상이 된다. 이름과 체불액은 물론이고 나이·사업장명·사업장 소재지, 사업주 개인 주소지까지 모두 공개된다. 공개 기간은 3년이다.

이렇게 신상이 공개된 체불 사업주는 26일 기준 총 698명, 이들이 체불한 임금은 총 474억5600만원이다. 가장 많이 체불한 사업주는 경북의 한 병원장으로, 총 5억원이 넘는 임금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체불 사업주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50대가 323명으로 가장 많지만, 3040세대 사업주도 192명으로 적지 않았다. 1억원 넘는 임금을 체불한 29세 사업주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업종별로는 건설업(234명)과 제조업(207명)이 많았다. 뒤이어 도소매업(41명), 정보통신업(32명), 숙박음식점업(28명) 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명단 공개’ 이상으로 정부가 이들에게 취할 수 있는 추가적인 조치는 사실상 없다. 이미 고용노동청 수사와 검찰 기소, 법원 재판까지 거쳐 형사처벌을 모두 받은 상태기 때문이다. 임금체불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만큼 전과자 딱지를 감수해서라도 임금을 돌려주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결국 임금을 떼인 근로자 개인이 소송을 제기해 직접 돌려받아야 하지만, 사업장을 폐업시키거나 사업주 개인이 파산 신청을 해버리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정부는 피해 근로자에게 체불임금을 우선적으로 지급하는 대지급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사업주로부터 다시 환수하는 비율은 매년 20%대에 머물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정부는 경제적 제재와 강제 수사를 강화해 임금체불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해선 신용제재 등의 패널티를 부과하고, 악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 구속 등 강제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 골자다.

임금체불의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법령 손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체불 당한 근로자가 원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는데, 이를 이용해 임금 일부만 지급하고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불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정산 오류로 임금체불=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지난 5년간 40억원에 가까운 임금체불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 7월)간 공공기관이 체불한 임금은 총 38억8000만원이다. 이 기간 임금을 체불당한 근로자는 1273명으로, 1인당 300만원꼴이었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체불 대부분이 연차 미사용 수당이나 퇴직금 정산 과정에서 노무 관리 미숙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데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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