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의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20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공공에선 12만 가구 수준의 물량을 추가 확보해 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3기 신도시 물량을 3만 가구 이상 확충하고, 신규 공공택지 추가 조성을 통해 8만5000가구 이상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부동산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공공부문에서 12만 가구 수준의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등 내년까지 총 100만 가구(인허가)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고 윤석열 정부 5년간 270만 가구 공급 계획도 차질 없이 달성하겠다”며 “양질의 주택이 필요한 곳에 충분히 공급되도록 이번 대책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공공·민간을 아우르는 이번 대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인허가와 착공, 분양 물량이 급감하며 2~3년 내 신규 주택 공급이 부족할 것이란 우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나왔다.
자잿값이 올라 공사비와 인건비는 치솟고 고금리로 금융 비용 부담까지 커지자 착공을 미루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주택 인허가는 21만3000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39%, 착공은 11만4000가구로 56% 급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수요 진작책이 없는 데다 실제 공급까지는 최소 수년이 걸리다 보니 실수요자가 즉각적으로 주택 공급이 늘었다고 체감하기엔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3기 신도시 용적률 높여 3만 가구 확충
공공주택 공급 확대는 크게 ▷수도권 3기 신도시 3만 가구, ▷신규 공공택지 조성에 따른 8만5000가구, ▷민간 물량의 공공주택 사업전환 5000가구 등을 추가 공급하겠다는 게 골자다.
수도권 3기 신도시는 남양주 왕숙·왕숙2,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5곳으로 모두 17만6000가구 규모다. 3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이 196%인데, 이를 지구별로 높여 총 공급 물량을 3만 가구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진현환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자체 등과 협의를 통해 확정한 곳만 3만 가구로, 추가 협의를 통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이렇게 하면 조성 원가도 줄어 분양가 인하 효과(85㎡ 기준 약 2500만원)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 5곳의 입주 예정 시기는 당초 2025~2026년이었지만, 토지 보상 등을 거치며 일정이 1~2년씩 밀린 상황이다.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 인천 계양으로 2026년 준공이 목표다. 지난 6월 착공한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은 2028년,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은 2029년 각각 준공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 입주 시기도 사업 절차 단계를 최대한 단축해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신규 공공택지 물량도 늘린다.
앞서 정부는 신규 택지 총 15만 가구 계획 중 김포한강2(4만6000가구), 평택지제·진주(3만9000가구) 등 8만5000가구 공급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오는 12월 6만5000가구 규모 신규 택지 후보지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이 물량을 8만5000가구로 늘리고 발표 시기도 11월로 앞당겼다. 진현환 실장은 “택지 부지가 모두 서울 반경 30㎞ 이내 입지고, 1만~2만 가구 수준의 중규모 신도시급이 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신규 택지 물량은 15만 가구가 당초 발표됐던 만큼 실제로 추가되는 물량은 2만 가구 정도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광역 교통망을 고려해 후보지를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공공주택 사업이 속도를 내도록 향후 지구계획과 주택사업계획을 동시에 승인해 사업을 4~6개월 이상 단축할 방침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공사(SH) 등 공공주택사업도 타당성 검토를 면제해 10개월 이상 사업 기간을 줄일 예정이다.
아울러 민간 주택건설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공택지 전매제한을 1년간 한시 완화한다. 현재 토지소유권 이전 등기 후에나 가능하지만, 민간의 사업 여건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택지 계약 후 2년부터 한 차례에 한해 최초 가격 이하로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여러 계열사를 동원한 이른바 '벌떼 입찰'을 막기 위해 계열사 간 전매는 계속 금지된다.
민간 PF대출 등 금융 지원 20조원 확충
이번 대책에서 당장 실효성 있는 건 부동산 PF 금융 지원 확대가 꼽힌다. 민간 주택건설 사업장에 실질적으로 막힌 자금줄을 뚫어줘 적체된 공사가 재개될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보증 확대 ▷PF 금융공급 확대 ▷중도금 대출 지원 등에 나선다.
PF 대출의 경우 공적 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PF 대출 보증 규모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10조원 늘리고, PF 대출 보증의 대출 한도도 전체 사업비의 50%에서 70%로 확대한다.
PF보증 심사기준도 완화한다. 예컨대 자기자본 선 투입 요건이 현재는 토지비의 10%인데, 이를 시공순위 100위 이내 중소 건설사에 대해선 5% 이내로 경감해 준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도 건설사 보증과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매입 한도를 3조원 추가해 총 7조2000억원 이상 규모로 부동산 PF 및 건설사를 지원할 방침이다. PF 정상화 지원 펀드는 1조원 추가해 총 2조원으로 확대한다.
HUG의 중도금대출 보증 책임비율도 현행 90%에서 100%로 확대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증비율이 100%가 돼 시중은행에서 중도금대출 실행이 보다 원활해져 사업자의 자금 조달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존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20조원 이상을 증액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민간 주택건설 사업장에 자금이 충분히 공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억4000만원가량 소형주택 보유해도 청약 가능
정부는 지난해 전세사기 등 여파로 연립·다세대, 오피스텔 등 비(非) 아파트 공급이 급감한 것과 관련해선 건설자금을 3.5% 최저 금리, 7500만원(가구당) 대출 한도로 1년간 한시 지원해 공급 증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또 소형주택 매매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청약시 무주택으로 간주하는 소형주택 기준가격도 상향한다. 수도권은 공시가격 1억3000만원에서 1억6000만원, 지방은 8000만원에서 1억원 등으로 변경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1억6000만원은 시세로는 2억4000만원 정도 주택에 해당한다”며 “그동안 소형주택 보유 시 청약 지원이 제한돼 구입을 꺼리는 청년층이 많았는데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공사비 분쟁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도심 주택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병목현상이 발생한 곳을 뚫어줘 주택 공급 흐름을 정상화한다는 취지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공공택지 사업을 주로 하는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도 “PF 보증 시 자기 자본 선투입 요건을 기존 10%에서 5%로 낮춰주면, 자금 부담은 물론 사업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중도금 대출 보증 책임비율 역시 100%로 확대하면 사업 중 자금 운용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대책이 건설업계 자금난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정도는 되지만, 대출 금리 등이 너무 높아 부담은 여전하다”며 “신규 사업 확대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특히 수도권 주택 공급에 대해선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수도권 3기 신도시 3만 가구 확충은 2~3년 후 공급 우려를 씻기엔 턱없이 미미한 물량”이라며 “신규 택지를 통한 공급도 10년 뒤에나 이뤄질 공급이어서 실수요자가 당장 체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도 “당장 실수요자의 거래를 유도할 만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며 “현재 주택공급의 핵심 법안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법, 주택법, 노후계획도시특별법 등이 국회 첫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주택 공급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실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진작책 없는 공급대책은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수요를 진작하는 정책은 이번에 아예 검토 대상 자체에서 뺐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이날 대책 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대책 목표는 경기 부양이나, 수요자들이 추가적인 세금이나 금융 혜택을 가지고 (시장에) 다시 뛰어들도록 하는 그런 게 아니다”며 “현재 착공이나 인허가 대기 물량이 사업성 악화나 여러 가지 규제, 금융의 일시적인 막힘 현상 때문에 못 가고 있는 부분을 풀어서 시장 자체의 동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정부는 올 초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폭 풀었고, 현재 구매심리지수나 미분양 추이 등을 볼 때 수요 측면은 상당히 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 수요를 부양할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에 공급 위주의 대책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추가로 마련 중인 수요 진작책도 현재로선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서울, 수도권 주도로 상승 중이지만 집값 고점이란 인식에 거래가 다시 주춤할 수도 있어 지금이 대세 상승국면인지, 지엽적인 상승국면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