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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창규의 시선

‘깡통 상가’ 속출, 흔들리는 부동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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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요즘 세종시는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텅 빈 상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올 2분기 소규모 상가(2층 이하, 연면적 330㎡ 이하) 공실률은 15.7%로 전국 1위이다. 중대형 상가는 20.1%로 울산(21.6%)에 이어 2위이다. 세종시 상가 건물 곳곳에는 ‘임대’ 안내문이 수두룩하다. 일부 상가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까지 걸려있다.

신도시 등 자영업자 폐업 늘어
상가수익률 1년 전의 반 토막
주택시장에 미칠 후폭풍 우려

세종시 일부 지역에는 이른바 ‘깡통 상가’도 많다. 이들 지역은 공실률이 60%에 달한다. 당초 세종시를 계획할 때는 2020년에 인구가 4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올해 7월 현재 세종시 인구는 38만여 명에 불과하다. 인구를 과대 예측하는 바람에 상가를 과잉 공급한 탓이다. 결국 꾸준히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상가에 투자한 개인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세종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의 ‘신’도시나 ‘혁신’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는 조성된 지 10년째가 됐지만 상가 공실률이 70%에 달한다. 한국전력 등 16개 공공기관이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이주한 이 도시는 당초 2020년이 되면 인구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지구단위계획 변경 등으로 상가 공급을 크게 늘렸다. 조성된 상가만 6000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곳의 인구는 3만9000여 명에 불과하다. 6.5명당 상가 한 곳이 있는 셈이다. 혁신도시는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계기로 조성했다. 상당수 다른 혁신도시에서도 상가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비어있다. 지난 10여년 새 조성된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하남·위례·광교·김포·마곡 등 수도권에 위치한 신도시에서도 곳곳에 ‘임대’ 문구가 붙어있는 상가가 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에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13.5%로 1년 전(13.1%)보다 0.4%포인트나 늘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지난해 6.6%에서 올해는 6.9%로 뛰었다. 고금리, 영업 비용 상승 등으로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수익률도 뚝 떨어졌다. 올해 2분기 소규모 상가 투자수익률(3개월간 부동산 보유에 따른 투자성과)은 0.66%로 전년 동기(1.43%)의 반 토막 수준이다. 연간 수익률로 환산해도 2%대이다.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4.5∼6.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을 밑도는 셈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상가에 투자했다가 인생 파탄 났다’고 하소연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 상가가 넘쳐나는 데도 공급은 그칠 줄 모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2만개 내외였던 상가 입주 물량이 2019년엔 4만개에 육박하더니 그 후엔 3만개 내외에 이른다. 이렇게 매년 상가가 쏟아지다 보니 ‘공실 도미노’는 강남 등 서울의 핵심 상권으로 번지고 있다. 상가 과잉 공급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건설 주체는 규제가 심하고 시장 파급력이 큰 주택보다 상가를 통해 이익을 남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상업용지 경쟁이 치열하다. 건설업체는 상업용지를 높은 가격에 낙찰받은 뒤 상가를 분양할 때도 이윤을 충분히 남기려 한다. 여기에 비싼 가격에 상가를 산 투자자는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지역 상가의 분양가가 3.3㎡당 1억원을 넘어설 정도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높은 임대료에 사업을 포기하거나 임대를 한다 해도 1~2년을 버티지 못한다. 결국 상가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비어 있게 된다. ‘비싼 땅값→고분양가→높은 임대료→공실 증가’의 악순환이다.

요즘 자영업자는 빚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60조7000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40% 급증했다. 문제는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수가 주택 등 부동산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문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면 주택 시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상가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주택이다. 지금 상당수 소상공인이 투자 여력이 없어 상가에 눈조차 돌리지도 못한다. 상가 미분양이 속출하는 이유다. 안 그래도 고금리와 경기 위축으로 자금이 부족하던 건설업체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달 들어서만 5개 건설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올해 들어 8월까지 폐업한 건설업체 수가 지난 3년간(2020~2022년) 폐업한 업체 수보다 많다. ‘퍼펙트 스톰’이 부동산 시장에 몰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