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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입시 공정경쟁 이뤄져야 한국경제 역동성 회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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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개천마다 용 나는 대학입시 만들기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개천에서 용들이, 그것도 수많은 용이 나던 시대가 있었다. 1960년대 이후 30년간, 여러 지역과 계층에서 나온 수많은 용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며 성장률의 고공행진이 지속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나는 용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나라의 성장률도 힘을 잃고 추락해 왔다.

개천에서 용 났던 1960~80년대

과거 수많은 개천에서 용들이 튀어 오르는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은 우리의 대학입시였다. 어느 사회나 대학입시는 젊은 인재의 능력을 평가하는 공공재 역할을 한다. 만약 한 사회가 지역·계층 상관없이 뛰어난 인재를 가려낼 수 있는 입시제도를 갖추면 그들에게 보다 많은 국가적 자원이 배분되면서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우리의 1960~80년대가 그랬다.

대학입시는 인재 판별 공공재
자원배분 효율화로 성장 촉진

30년간 부모 경제력 격차 확대
고비용 사교육, 대학입시 좌우
분배 형평·자본주의 효율 저해

대학입시가 이런 자원배분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두 가지가 요구된다. 첫째,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입시에서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찾을 수 있는 쓸모 없는 지식까지 얼마나 많이 암기했는지로 평가하는 시대착오적인 입시를 이제는 지양하고, 이 시대 최고의 인적 자산인 창의력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일부 지역·계층에서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축구 국가대표를 뽑을 때 한 동네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을 뽑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진짜 실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는 입시제도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2014년에 쓴 논문에서 타고난 잠재력과 공부에 투자한 노력에 비례하여 학생이 얻는 진짜 실력을 ‘진짜 인적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학생의 진짜 실력을 알아내고자 대학은 입시에서 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출신 학교 등을 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대학이 평가하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겉보기 인적자본’일뿐 학생의 진짜 실력과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고비용 사교육은 학생 실력 과대포장

현재의 지식암기형 입시 시스템에서는 특히 고비용의 사교육 등 다양한 치장법을 이용하면 진짜 실력보다 과대 포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수능에 나올 수 있는 문제 1만 개 중 9000개나 습득한 학생이라도 자신이 공부하지 않은 문제 중에서만 수능에 나오면 겉보기 인적자본은 0점이 될 수도 있다. 반면에 1000개만 익힌 학생도 자기가 공부한 문제 중에서만 나오면 겉보기 실력은 100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겉보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공부해야 하는데, 그 정보는 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입시학원이 가장 잘 안다. 그 결과 입시학원에서 고비용 사교육이란 치장법을 구입한 학생이 입시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특히 부모 경제력이 높을수록 다른 학생들은 수강하기 어려운 고비용 학원 교육 등의 도움을 받아 진짜 실력 이상으로 겉보기 실력을 키워 합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서울대 합격률, 강남구가 강북구의 20배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특히 지난 30년간 성장률 추락과 함께 부모들의 경제력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학생들의 겉보기 인적자본 차이도 점점 벌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진짜 실력만으로 겨루는 공정 경쟁 체제가 크게 약화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울시 데이터를 보면 아파트값이 비싼 지역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 확률이 타 지역보다 훨씬 높다. 물론 잘사는 지역 학생들이 타고난 잠재력과 진짜 인적자본 자체가 더 높아 합격 확률도 더 높아졌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통계자료를 분석해 보면 2014년도 일반고 학생의 서울대 합격률이 강북구는 0.1%인데 비해 강남구는 그 20배인 2%나 되었다.

필자가 2015년 류근관·손석준 교수와 제한적인 데이터를 갖고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요소로 결정된 진짜 인적자본’에 따른 서울대 합격확률이 강북구는 0.5%, 강남구는 0.84%로 추정되었다. 타고난 잠재력만으로 선발했다면 강남구 학생들이 1.7배 정도 더 많이 서울대에 합격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남구 학생들이 20배나 더 들어갔다.

입시 공정경쟁 위한 교육개혁 추진해야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러한 입시 공정 경쟁의 약화는 분배의 형평성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성까지 크게 저해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시대착오적인 모방형 교육과 함께 한국 교육의 또 다른 치명적 아킬레스건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022년 9월 20일 자 참조). 따라서 우리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창조형 교육제도와 함께 입시 공정 경쟁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교육개혁을 국가적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개혁을 위해 우선 입시와 관련된 객관적인 빅데이터 구축이 긴요하다. 미국에서는 대학별 입시 데이터와 국세청 소득 데이터가 구축되어 하버드대 라즈 체티 교수의 최근 연구 등 다양한 실증적 입시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기관들의 데이터 비공개로 인해 객관적인 데이터와 실증적 증거가 없다시피 하다. 이로 인해 자신의 자녀 한두 명만의 교육을 통해 얻은 개별적 경험을 일반화한 국민 간 주관적 의견 대립만 있게 되어 개혁 추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국민적 합의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제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각 대학 입시 자료와 소득 데이터 등을 연결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특정 정당이나 이념과 무관한 비정치적 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증 및 이론 연구에 따른 객관적 증거에 기반을 두어 모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최적의 공정 경쟁 대입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혁신된 대입 제도를 통해 여기저기 개천에서 수많은 진짜 용, 진짜 인재들이 나와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분배의 형평성을 동시에 회복하고 다시 한번 성장의 황금시대를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정 경쟁과 창의성 촉진하는 입시 제도

성장의 황금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검토해 볼 유효한 입시 제도들이 있다. 내신 상위 10% 학생들을 무조건 뽑아주는 미국 텍사스 주의 ‘텍사스 톱텐 제도’ 혹은 필자가 제안한 ‘비례경쟁 선발제’다.

비례경쟁 선발제는 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의 평가를 두 단계에 걸쳐 한다. 1단계에서는 같은 학교(혹은 지역) 학생들끼리만 비교 평가하여 그 학교 학생 수에 비례하여 뽑는다. 2단계에서는 1차에 뽑힌 모든 학생을 학교·지역 관계없이 비교 평가하여 대학 입학 정원만큼 최종 선발한다.

이런 비례경쟁 선발제는 전국에서 지원한 모든 학생을 학교·지역 상관없이 한꺼번에 선발하는 ‘전국단위 평가 선발제’가 가진 정보 불평등 문제를 없애준다. 전국단위 평가의 경우에는 평가기관의 기출문제 분석 등을 통해 출제 가능성이 높은 문제들을 파악한 입시학원에서 정보를 확보한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 정보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비례경쟁 선발제’의 경우 1단계 평가에서 이용되는 학교 시험에 대한 정보는 같은 학교 학생들에겐 똑같이 제공되기 때문에 학생들 간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사라지고 치장법도 힘을 잃는다.

학교·지역 간 학생들의 능력 분포가 차이 나는 경우에도 비례경쟁 선발제는 2단계에서 우수 학생이 많이 분포된 학교의 학생들을 더 많이 뽑기 때문에 부유한 지역 학생들을 역차별하게 되지 않는 효율적인 선발시스템이다.

비례경쟁 선발제의 1단계는 학교에서 꼭 배워야 할 핵심 지식 중심으로 평가하되, 2단계에서는 시험·면접 등을 통해 창의력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연구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라면 ‘시간을 저축하는 창의적인 방법은?’과 같이 사교육이 답해줄 수 없는 창의력 평가 문제를 낸다. 혹은 면접에서 ‘남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평가 교수들이 꼬리 물기식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이런 평가방식은 피동적 사교육에만 매몰되지 않고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며 창의력을 쌓은 전국 각지의 진짜 용, 진짜 인재들을 효과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더해서 우리 자녀들이 온갖 지엽말단적 지식까지 외우는 대신 새 시대의 생존수단인 창의력을 키워 장차 나라를 이끌 진짜 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강력히 유도한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