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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 단골 비디오가게…영화가 된 부활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다큐 ‘킴스 비디오’는 희귀 영화들을 갖춘 뉴욕의 비디오 가게 이야기다. [사진 오드(AUD)]

다큐 ‘킴스 비디오’는 희귀 영화들을 갖춘 뉴욕의 비디오 가게 이야기다. [사진 오드(AUD)]

“두유 노 킴스 비디오(Do you know Kim’s video)?”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이탈리아 살레미까지 이어진다. 영화 ‘킴스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킴스 비디오는 뉴욕에 있던 비디오 대여점이다. 1986년 개업해 5만5000편의 방대한 컬렉션을 갖고 25만 명의 회원에게 영화를 빌려줬다. 11개 체인점에 300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코세이지·타란티노 감독이 회원이었고, 코엔 형제의 600달러 연체료도 화제였다. ‘보물상자’ ‘금광’이라 불렸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급격히 몰락한다. 김용만(65·사진) 대표는 2014년 폐업 선언을 한다. 이때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나는 패배자다. 그저 잊히고 싶다”고 말했다.

김용만 대표

김용만 대표

이곳 단골이던 데이비드 레드먼, 애슐리 사빈 부부가 6년을 촬영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킴스 비디오’는 사라진 비디오들의 행방을 뒤쫓는 한편, 한때 이스트 빌리지 비디오 왕국의 군주였던 김 대표의 이야기를 캔다. 전북 군산 출신으로 20대 초반에 뉴욕에 이민 간 김용만 대표는 과일 좌판에서 세탁소를 거쳐 킴스비디오를 개업한다. 희귀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명소였다. 점포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모은 5만5000점의 컬렉션을 기증할 곳을 물색했다. “회원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공공에 개방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여러 대학과 기관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그는 이탈리아 살레미 시를 택했다. 시칠리아 섬의 인구 1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2017년 찾아간 두 감독은 습기 찬 건물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비디오 더미를 확인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보다 못한 두 감독은 2만5000여점을 훔쳐 미국으로 가져온다. 수소문 끝에 새로운 인수자도 찾았다. 돌아온 ‘킴스 비디오’는 지난해 뉴욕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극장에 자리 잡고 다시 문을 열었다. 살레미 시와도 문제를 풀어 지난해부터 시칠리아 섬의 야외극장에서 ‘시네킴 영화제’를 열고 있다.

비디오 가게를 둘러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는 27일 국내 극장에 걸리게 됐다. 개봉을 앞두고 21일 김용만 대표는 서울 용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넷플릭스도 비디오 대여점에서 시작했다. 왜 킴스 비디오는 넷플릭스가 되지 못했을까.
“킴스 비디오는 2004년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지만 디지털 부서에 들어가는 돈이 감당이 안 됐다.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4년 하다가 포기했다.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제한된 자금으로는 큰 규모의 사업 경쟁에서 어렵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왜 영화였나.
“8살 때 고향 군산에서 본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가 내 인생 첫 영화다. 미국에 이민 가게 됐고, 우연히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정착했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영화를 배웠다. 컬렉션을 하나하나 챙기는 건 나한테 전투였다. ‘남들과 달라야겠다’ ‘열심히 만든 작품들이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나섰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학생들, 언더그라운드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이다. 또 뤼미에르 형제의 1895년 영화보다 앞서는 에디슨의 1893년 영화도 갖고 있다. 5만5000개 컬렉션은 전무후무하다. 내 삶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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