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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56% "법안 시행시 수술실 닫겠다"…'CCTV 의무화'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5일 수술실 내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를 의무화하는 새 의료법에 회원 93.2%가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부터 시행된 개정 의료법에 따르면 전신·수면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환자·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의협은 설문에 참여한 회원의 91.2%가 해당 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응답했고, 90.7%가 법 시행에 따른 외과 기피현상으로 필수의료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밝혔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필수 의협회장은 “(법 시행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갈 것”이라며 법안의 처벌조항 적용을 유예하는 계도기간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의협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18일 회원 전체를 대상으로 물어 총 1267명이 응답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CCTV 설치법을 반대하는 응답자들은 그 이유(복수응답)로 ‘의료진 근로감시 등 인권침해’(51.9%)를 가장 많이 꼽았고, 그 뒤로 ‘의료인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인식 발생’(49.2%), ‘진료위축 및 소극적 진료 야기’(44.5%)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또 법안 시행 시 수술실을 폐쇄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 비율이 55.7%로, 폐쇄 의향이 없다는 응답(44.3%)보다 11.4% 높았다.

임지연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임지연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같은 결과는 앞서 지난 5일 의협이 헌법재판소에 해당 의료법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 및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하며 반발해온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앞서 의협은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낸 입장문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환자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감시 상태에 놓여있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의사가 적극적인 치료를 주저하게 되고, 이런 압박감으로 외과·산부인과 등 수술을 요하는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전공의들의 기피가 심화될 것이란 게 이들의 우려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CCTV 설치 의무화가 필수 의료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중점적으로 제기됐다. 이필수 회장은 “과거만 해도 의사들은 성공률이 10%뿐이라 해도 사명감을 갖고 수술에 임했다”며 “그런데 CCTV가 촬영하고 있으면 앞으로 누가 위험을 감당하면서까지 소신껏 치료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특히 중소병원이나 의원급 기관들은 전신마취를 요하는 수술을 전부 대학병원으로 보내려 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CCTV 설치·운영 기준이 모호하다는 불만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법 시행을 앞두고 가장 우려되는 사항’에 대한 질문(복수응답)에 대해 ‘설치·운영 기준 모호함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75.5%), ‘안전관리조치 모호함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62%)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법안은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을 CCTV 설치 의무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부터 각 지자체마다 달라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의협 측 설명이다. 임지연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어떤 지자체는 ‘(수술실이 아닌) 회복실에도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안내하는가 하면, 몇 천만 원을 들여 설치했는데 뒤늦게 ‘진료과목이 외과에 들어가지 않으면 설치 안 해도 된다’고 안내가 변경되기도 했다”며 “복지부가 만든 가이드라인에 대한 각 지자체 보건소 직원들의 해석에 차이가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법안은 또 촬영된 영상을 임의로 제공하거나 누출·변조·훼손하는 경우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처벌 규정도 두고 있는데, 해킹 등 의료진이 의도치 않은 유출에 휘말릴 경우 처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에 의협은 일정 기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과 CCTV 유지·보수 비용에 대한 지원도 정부에 요구했다. 이 회장은 “현재 보안에 관한 유지비용은 정부가 단 1원도 지원해주는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시행되면 언젠가 해킹 등 사고가 터질까 우려가 크다”며 “지금은 설치 기준부터 모호하기 때문에 6개월 이상의 충분한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협은 비윤리적 의료행위를 방지할 대안으로 ‘처벌강화 추진’을 택한 회원이 64%로 가장 많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술실 CCTV가 아닌, 처벌 강화로 불법 의료행위를 근절하자는 회원들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불법을 저지른 회원에 대해서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회원들의 정서”라며 “대리수술, 마약류 처방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회원에 대해 검찰에 즉각 고발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협회에게 징계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호사협회 같은 경우 자율징계권이 있어 신속하게 비윤리적인 회원을 징계하고 있다”며 “우리도 정부와 의료현안협의체 논의를 통해 자율징계 부분을 계속해서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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