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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원사업 요구하며 ‘120조 반도체산단' 지연시킨 여주시장…감사원 "엄중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15일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15일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SK그룹

지역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 ‘120조원 투자’가 예정된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 인·허가를 부당하게 지연시킨 여주시장이 감사원으로부터 엄중 주의 조치를 받았다. 선거에 당선된 뒤 “집값이 떨어진다”는 민원에 적법한 물류창고 건축 허가를 취소하려 한 양주시장도 경고를 받았다. 감사원은 25일 ‘소극행정 개선 및 개혁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은 지자체장의 권한 남용과 이해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규제 개혁을 회피한 정부 부처의 소극적 업무 행태를 질타했다.

감사원이 여주시장에게 문제로 삼은 건 2019년 SK하이닉스가 120조원 투자를 약속한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 인·허가 문제다. 산업단지는 용인에 조성되지만,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용수는 남한강에서 끌어와야 해 취수 관련 인·허가권은 여주시가 쥐고 있었다.

SK하이닉스와 여주시는 2022년 6월 공업용수 관로가 통과하는 4개 마을에 대한 상생협약을 맺었다. 관련 법령상 모든 조건이 충족돼 여주시의 최종 허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감사원에 따르면 이충우 현 여주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그해 7월 취임한 뒤 협의 절차는 올스톱됐다. 이 시장이 축사 악취 민원과 지역 공업용지 제한 완화 등 사업과 관련 없는 숙원 사업의 추가 지원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용수 인프라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김성구 용인일반산업단지 대표(앞줄 오른쪽부터),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이충우 여주시장, 이한준 LH사장이 협약서를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용수 인프라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김성구 용인일반산업단지 대표(앞줄 오른쪽부터),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이충우 여주시장, 이한준 LH사장이 협약서를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은 이 시장의 요구가 권한남용이라 판단해 고발을 검토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등 여당과 경기도가 중재에 나서며 여주시에 추가 지원책을 약속했고, 이 시장은 지난해 11월 인·허가를 뒤늦게 승인해줬다. 감사원의 고발 계획도 취소됐다. 감사원은 “여주시의 부당한 인·허가 지연으로 산단 조성과 관련해 매주 17억원의 불필요한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강수현 양주시장도 지난해 7월 취임 뒤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민 반발에 수백억 원이 투입된 지역 물류창고의 적법한 건축 허가를 취소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강 시장은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지난해 11월 관련 인·허가를 승인했다. 감사원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두 지자체장에 대한 엄중 주의를 요청했다. 여주시와 양주시는 “지역 주민들 요구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했다”고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사원은 국토교통부가 부실한 연구용역 결과에 근거해 레미콘 믹서 트럭의 신규 등록을 제한해왔다고도 지적했다. 감사원은 2019년 국토부가 용역을 의뢰한 레미콘 트럭 연구용역 보고서를 검증한 결과 애초 ‘공급 부족’이란 결론이 나왔음에도, 해당 연구자가 관련 내용을 조작해 ‘공급 초과’라고 국토부에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별다른 검증 없이 이를 받아들여 신규사업자 진입을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미콘 믹서 트럭 수는 2009년 이후 2만 6000여대에서 그대로 멈춰있다. 매번 양대 노총의 ‘이권 카르텔’ 사례로 꼽혀왔다.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이 세워져 있다. 정부는 2009년 이후 레미콘 신규사업자 진입을 막아왔다. 연합뉴스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이 세워져 있다. 정부는 2009년 이후 레미콘 신규사업자 진입을 막아왔다. 연합뉴스

감사원은 서울시가 택시업계 반발 우려에 택시의 불법 무단휴업을 사실상 용인하고 관련 제재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지난 4년간 서울시 택시 운행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면허 대수 대비 평균 운행률은 57%에 불과했다. 감사원은 이같은 서울시의 업무해태로 코로나 19 기간 택시부족 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금융위원회의 경우 혁신금융서비스에 대해 규제를 면제해주는 특례제도를 운용하며, 법령에도 없는 사전 수요조사 절차를 만들어 기업의 신청 권한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혁신 서비스가 정부 심사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주는 차원”이라고 반박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방청은 기존 화재경보설비의 각종 오작동 대책으로 사물인터넷(IoT) 화재경보시스템을 새로 도입하기로 했지만, 별다른 근거 없이 관련 법령 개정을 수년간 지연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은 각 부처에 이같은 소극행정 업무 담당자에 대한 주의 및 징계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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