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발에 선글라스 '냉혈 보스'…전설의 그녀도 말문 막힌 질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애나 윈투어. 보그 편집장이었지만 이젠 보그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선글라스와 단발은 그의 시그니처다. 로이터=연합뉴스

애나 윈투어. 보그 편집장이었지만 이젠 보그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선글라스와 단발은 그의 시그니처다. 로이터=연합뉴스

패션지 보그(Vogue)를 읽은 적이 없다고 해도, 보그를 만드는 애나 윈투어를 모르긴 어렵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주인공 냉혈 보스의 실존 모델로 통하는 윈투어는 보그 편집장 타이틀을 35년간 지켜낸 전설의 에디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인터뷰 코너, '런치 위드 더 FT'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잡지 매체력은 줄어 들어왔지만 윈투어 개인의 영향력과 이름값은 반대로 커져 왔다"고 짚었다. 윈투어의 현재 직함은 보그의 모(母)그룹 콩데 나스트의 글로벌 최고 콘텐트 경영자(Chief Content Officer)로, 32개국에서 보그를 포함한 다수 매체의 발행과 마케팅을 책임진다.

윈투어의 존재감은 에디터를 넘어 패션계의 전설에 가깝다. 전설적 디자이너들이 그를 친구 또는 멘토라고 부른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윈투어를 가장 친구 중 하나로 꼽고,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유대인 비하 발언으로 구찌에서 해고 당한 뒤 SOS를 친 인물도 윈투어였다. 가지런한 단발과 선글래스 차림의 윈투어가 맨 앞줄에 앉아있는 패션쇼라면 흥행엔 성공한 것으로 통한다. 윈투어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연간 회원권인 '보그 100'이라는 멤버십도 있을 정도다. 연 10만 달러(약 1억 3000만원)인 이 회원권은 윈투어의 컨설팅이 필요한 이들에게 절찬리에 판매되는 콩데 나스트의 효자상품이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생전 함께 자리한 애나 윈투어. 2018년 한 패션쇼에서의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생전 함께 자리한 애나 윈투어. 2018년 한 패션쇼에서의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런던에서 1949년 태어난 그는 영화 평론가인 어머니와 이브닝 스탠다드 신문사의 에디터로 오래 일한 아버지 슬하에서 부유하지만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보그 에디터'라는 꿈을 심어준 건 그의 아버지였다. 그는 FT에 "장래 희망 사항을 적어가는 학교 숙제에 아버지가 '보그 에디터'라고 적으라고 권해줬다"며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는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FT에 "학교를 16살에 그만뒀다"며 "다들 공부를 잘하는 집안이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고, 게으른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패션 잡지에 취직을 했다고 한다. 패션을 유독 좋아했던 그는 조금씩 진가를 드러냈고, 곧 고향 런던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보그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 찬스'를 쓴 셈이지만, 커리어는 스스로 쌓아나간 셈.

가끔 선글래스를 벗기도 한다. 2019년 한 패션행사의 레드카펫에서처럼. AP=연합뉴스

가끔 선글래스를 벗기도 한다. 2019년 한 패션행사의 레드카펫에서처럼. AP=연합뉴스

그가 한창 일할 때인 20대, 잡지계는 황금기를 구가했고 윈투어의 커리어 역시 순항했다. 한 번은 830여 페이지의 보그를 펴낸 적이 있는데 그중 700여 페이지가 광고였다고 한다. FT는 "보그에 광고를 하는 브랜드들은 매체의 영향력보다는 광고를 해야 윈투어의 눈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고 전했다.

애나 윈투어가 주도한 2021년 1월 보그 커버. 첫 미국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AFP=연합뉴스

애나 윈투어가 주도한 2021년 1월 보그 커버. 첫 미국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AFP=연합뉴스

윈투어를 윈투어로 만든 건 뭘까. 그는 FT에 "나는 스케치도 못 하고, 가위로 옷감을 잘 자르지도 못한다"며 "하지만 패션을 잘 알고 모든 게 제 자리에 잘 있도록 큰 그림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보그 편집장으로 처음 제작했던 커버는 패션지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전까지 패션 잡지 커버는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정적인 이미지가 정석이었지만, 윈투어는 거리에서 모델이 자연스럽게 웃으며 걸어가는 사진을 올렸다. 당시로선 과감한 차별화 시도였다.

그는 "매일매일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도전을 할 수 있기에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극복했다. 보그의 광고매출이 떨어지자 자신의 고집을 꺾고 화보에 브랜드 이름을 표기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스틸컷. 사진 채널CGV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스틸컷. 사진 채널CGV

같이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고를까. 윈투어는 "내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사무실에서 계속 봐도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일 잘하는 건 물론 옷도 잘 입고 센스도 좋아야 한다는 의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도 신입 직원이 입고 온 옷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도 눈물도 없는 까다로운 이미지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이 나오자 그는 한 번도 말을 더듬거나 망설인 적이 없던 그가 긴 침묵을 지켰다고 FT는 전했다. 그가 내놓은 답은 이랬다. "내 딸과 아들은 진짜 나를 알고 있으니, 그럼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