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롤스로이스남’ 신모(27)씨가 속한 조폭 또래모임 ‘강남 MT5’의 핵심 피의자 2명이 검찰에 백지 자수서를 제출한 뒤 자취를 감춘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 신준호)는 이달 중순 이들 피의자로부터 범죄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잘못이 있다면 검찰에 자수하겠다’는 내용의 한 줄짜리 자수서를 제출받았다. 하지만 정작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이들은 잠적했다.
MT5는 롤스로이스남 사건을 계기로 상습 마약, 도박, 사기 의혹이 불거진 신흥 범죄조직이다. 검찰은 지난 6일 신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긴 뒤, MT5로 수사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신씨는 지난달 2일 약물에 취한 채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20대 여성을 치고 도주해 뇌사 상태에 빠뜨린 혐의다. MT5는 이른바 ‘MZ조폭’으로 분류된다.
불법토토·마약 팔아 번 돈, 별풍선깡으로 세탁
MT5는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의 ‘토사장(불법 토토 운영자의 속칭)’으로 활동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핵심 조직원 중에는 2019~2021년 사설 외환 차익거래(FX마진거래)를 빙자한 ‘홀짝 게임식’ 불법 도박 사이트들의 잔당들도 포함돼 있다. 2021년 경기남부경찰청이 검거했던 도박 사이트 FXCT의 운영진 80여명 가운데 처벌이 강하지 않아 금세 풀려난 인물들이 MT5에 흡수됐다고 한다.
MT5는 또 가상화폐 거래소를 개설해 텔레그램을 통한 마약 거래를 주도하고, 해외 선물 리딩방을 차려 거래 수수료를 갈취하는 등 다양한 온라인 범죄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조직명 MT5는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메타 트레이더(Meta Trader)’에서 따왔다.
이들은 이렇게 얻은 범죄수익을 소위 ‘별풍선깡’으로 세탁했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아프리카 여성 BJ 등과 짜고, 한 번에 5억원어치 별풍선(후원금)을 송금한 뒤 나중에 나눠갖는 식이다.
MT5 전원 출금…‘람보르기니남’도 조사
현재까지 검찰이 파악한 MT5 조직원은 약 15명이다. 캄보디아·태국 등으로 도피했다가 재입국한 일부 조직원을 포함해 전원 출국금지된 상태다. 조직원 규모는 향후 수사에 따라 더 확대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11일 서울 논현동에서 마약을 투약한 상태로 람보르기니 차량을 몰다 주차 시비가 붙은 시민을 흉기로 위협한 ‘람보르기니남’ 홍모(30)씨도 MT5와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로 보고 연관성을 수사하고 있다. 홍씨는 지난 20일 특수협박·무면허운전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의리'보단 '돈'…달라진 조폭, 입법은 공백
MT5처럼 ‘또래모임’ 형태로 재편되고 있는 신흥 조폭을 엄벌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 조폭은 명확한 상하관계 하에서 폭행·패싸움을 일삼던 과거 조폭들과 달리, 온라인을 무대로 마약·도박·금융사기 등을 통해 큰돈을 버는 게 목적인 느슨한 조직”이라며 “조폭 처벌에 있어 상하관계와 폭력 행위를 전제하는 20~30년 전 법령과 판례로는 이해관계로 묶인 MZ세대 조폭을 강력하게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단체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새로운 법리 개발과 입법의 필요성이 큰 상황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