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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설치보다 벌금 내는게 더 싸"…이런 기업 27곳 어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광주 북구 반다비체육센터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육아문화 조성을 위한 ‘아빠와 함께하는 육아골든벨’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광주 북구 반다비체육센터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육아문화 조성을 위한 ‘아빠와 함께하는 육아골든벨’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회사 구성원 50% 이상이 누리는 것이 복지인데 어린이집은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 누린다.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지만, 벌금이 (운영비보다) 싸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최고위급 임원이 지난달 직원과의 온라인 미팅에서 한 발언이다. 무신사는 당초 서울 성수동에 구축 중인 신사옥에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실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그러다 위 발언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문일 무신사 대표는 부랴부랴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과하며 위탁 보육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출산ㆍ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이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총 27곳이다. 설치 의무 미이행 사업장 136개소 중 명단 공표 제외 사유에 해당하는 109개소를 뺀 수치다. 설치 대상이 된 지 1년 미만인 경우나 현재 설치 중인 경우, 근로자 특성상 보육수요가 없는 경우 등은 명단 공표 제외 사유가 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거나 상시근로자가 5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의무다. 사업장 여건에 따라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 보육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해 회사명이 공표된 메가스터디와 에듀윌ㆍ컬리ㆍ쿠팡 등 27개 사업장은 법이 정한 직장의 보육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다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비즈테크아이 ▶이와이컨설팅 유한책임회사 ▶㈜코스트코 코리아 ▶한영회계법인 등 6곳은 2년 연속 법령을 위반했다.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하지 않을 경우 연간 최대 2억원(1년에 두 차례, 매회 1억원 범위)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하지만 설치에 드는 비용보다 벌금을 내는 것이 저렴해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이행강제금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복지부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금액이 낮지 않은 수준인데다, 해마다 의무를 이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행강제금 부과 제도가 도입된 2016년 이전의 의무이행률은 2015년 52.9% 수준이었으나 2017년 81.5%로 급증했고 지난해 91.5%로 올랐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기업의 ‘보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한국이 초저출산 국가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 확대뿐 아니라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 결국 양육을 위한 사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직장에서 이를 얼마나 배려해주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은 미래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라며 “기업이 선심 쓰듯 복지 정책을 내놓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당연한 투자라고 인식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반도미래연구원(한미연)이 지난달 전문 리서치업체 엠브레인과 함께 전국 15~59세 남녀 230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직장 만족도가 높은 집단에선 60.2%가, 불만족 집단에선 45.2%가 출산하겠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로 한정하면 각각 55.8%(만족도 높은 집단), 32.6%(불만족 집단)로 차이가 더 컸다. 직장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연차의 자유로운 사용, 육아 휴직 보장, 출산 후 복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 출산 장려 분위기 등이 꼽혔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한 듯 최근 적극적인 저출산 대책에 앞장서는 회사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업 노사 가운데 처음으로 저출산ㆍ육아지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임신과 출산을 돕기 위해 난임 유급 휴가를 기존 3일에서 5일로 확대하고, 난임 시술비도 1회당 100만원 한도로 횟수 제한 없이 지원하기로 했다. “저출산 극복의 롤모델이 되겠다”고 선언한 포스코 그룹에선 ‘배우자 태아 검진 휴가제’를 시행해 남성도 임신과 출산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정부의 정책도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부모들이 마주하고 있는 직장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출산과 육아가 가능해진다”며 “기업들이 인구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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