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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회관으로 모이세요"…고향 찾아 의료 봉사활동 펼친 한의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4일 오전 9시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노인회관에 80~90대 어르신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휴일 오전 마을 어르신들이 단체로 노인회관을 찾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날은 한방 의료봉사가 있는 날이라 평소와 달랐다. 며칠 전부터 마을 방송 등을 통해 의료봉사 날짜를 기억해 둔 어르신들이 이른 시간부터 노인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조미선 원장(사진 왼쪽)이 24일 오전 고향인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를 찾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조미선 원장]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조미선 원장(사진 왼쪽)이 24일 오전 고향인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를 찾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조미선 원장]

이날 한방 의료봉사엔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 중인 조미선(53) 원장이 나섰다. 조 원장 고향이 운정리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한의사가 된 이후에도 가슴 한쪽엔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했다고 한다. 부모가 계신 고향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는 못했다. ‘월급쟁이’ 한의사 생활에 고향 의료봉사는 그간 생각에만 그쳤었다.

한의원 차린 뒤 고향 찾아 의료봉사

2020년 10월 한의원을 개업한 조 원장은 곧바로 고향 의료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하면서 봉사 시기는 자꾸 미뤄지기만 했다. 지난봄부터 코로나19가 점차 안정세에 접어들자 조 원장은 지인들과 함께 고향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진료할 장소를 마련하고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약재도 준비했다. 조 원장의 지인인 한의사도 그의 뜻을 알고 동참했다.

24일 고향 의료봉사 때 어르신들에게 제공한 한약. [사진 조미선 원장]

24일 고향 의료봉사 때 어르신들에게 제공한 한약. [사진 조미선 원장]

당진에 사는 부모와 형제들도 조 원장의 봉사활동을 도왔다. 마을 방송으로 무료 한방진료가 이뤄진다는 내용을 알리고 조 원장이 진료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인회관을 한의원처럼 꾸몄다. 조 원장의 큰 오빠는 마을 곳곳에 현수막도 내걸었다. 조 원장은 이날 하루 어르신들에게 침과 부항, 추나 등의 진료를 하고 속을 편하게 하는 한약 등도 제공했다.

마을 어르신들 "잊지 않고 찾아와줘 감사" 

이날 노인회관을 찾은 오명예(88) 할머니는 “여기로 시집와서 평생을 살았는데 이런 의료 봉사는 처음”이라며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한방 진료까지 해주니 더욱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미선 원장(뒷줄 왼쪽)이 신평면 운정리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다. [사진 조미선 원장]

조미선 원장(뒷줄 왼쪽)이 신평면 운정리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다. [사진 조미선 원장]

조 원장의 고향인 운정리는 행정구역상 당진에 속해 있지만 충남 아산, 경기도 평택과 맞닿아 한의원 등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어르신들은 오랜 시간 농사일로 근골격계 등 만성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한의원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경제 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어르신들은 진료비 몇천원을 아끼려 한의원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다.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게 조 원장이었다.

조 원장은 “산과 들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자식을 대표하는 마음으로 의료봉사를 준비했다”며 “부모님 생전에 어릴 적 꿈을 실현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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