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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년 전 동학군 고손자까지 혜택? 매달 10만원씩 주는 정읍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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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전봉준 장군 등 동학농민군 행렬 동상. 1987년 10월 같은 자리에 세워진 전봉준 장군 동상을 만든 김경승 작가가 친일 논란에 휩싸이자 정읍시는 2022년 9월 해당 동상을 철거한 뒤 전국에서 모금한 2억2571만원을 포함한 13억7984만5000원을 들여 새 동상을 만들었다. [사진 정읍시]

지난해 6월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전봉준 장군 등 동학농민군 행렬 동상. 1987년 10월 같은 자리에 세워진 전봉준 장군 동상을 만든 김경승 작가가 친일 논란에 휩싸이자 정읍시는 2022년 9월 해당 동상을 철거한 뒤 전국에서 모금한 2억2571만원을 포함한 13억7984만5000원을 들여 새 동상을 만들었다. [사진 정읍시]

"2차 봉기 참여자도 독립유공자 예우"  

129년 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에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되자 국가보훈부가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 발상지 지자체에서는 유족에게 이미 매달 10만원씩 주고 있다.

24일 보훈부에 따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는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만 참석한 가운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엔 1894년 9월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서 서훈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유공자 후손들은 교육·취업·의료 분야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다.

이 개정안은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전북 정읍시·고창군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발의했다. "보훈부 소관인 정무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며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소위 퇴장 후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총선용"이라고 지적했다.

유네스코가 지난 5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4·19혁명 기록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2건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했다. 사진은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인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 [연합뉴스]

유네스코가 지난 5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4·19혁명 기록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2건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했다. 사진은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인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 [연합뉴스]

보훈부 "심사 없이 유공자 인정은 특혜" 

이에 보훈부는 지난 20일 의견문을 내고 "현재 학계 다수에선 동학 2차 봉기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도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로 강제해 입법한 건 독립유공자 서훈 체계를 무력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독립·국가유공자는 엄격한 보훈 심사를 거쳐 유공자로 인정하는 반면, 개정안은 대상자를 심사 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훈 관련 법안을 무시하고 형평성도 간과한 과도한 특혜를 주는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된 사람은 3745명이다. 유가족은 '고손자'까지 포함해 1만2962명이다.

문체부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문병학 기획운영부장은 "동학농민운동 참여자는 당시 일본 공사관 기록이나 재판 기록 등을 바탕으로 등록했다"며 "129년 전 일이다 보니 손자도 거의 70~80대고, 대부분 증·고손"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민주당 홍익표 문체위원장은 이날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양당이 합의해야 전체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겠다"고 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현황.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현황. [연합뉴스]

천도교 등 "명백한 독립운동" 서훈 촉구  

그동안 전국 동학농민혁명 관련 37개 단체와 동학을 뿌리로 둔 천도교를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해 왔다.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선 일제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일제에 항거한 사람을 독립유공자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권 침탈 전후'를 언제로 볼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보훈부는 공적 심사 내규에 국권 침탈 시기를 1895년 10월 을미사변으로 정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서훈 대상에서 배제해 왔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1962년부터 지난해까지 을미의병에 참여한 143명을 서훈했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을 이끈 전봉준 장군은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을 이유로 포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난 5월 11일 충남 공주시 우금티 전적지에서 열린 '제129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서 동학농민혁명 유족과 기관·단체장, 시민 등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1일 충남 공주시 우금티 전적지에서 열린 '제129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서 동학농민혁명 유족과 기관·단체장, 시민 등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특별법 제정…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3월 특별법이 제정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란 1894년 3월 봉건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 일제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2차로 봉기한 농민 중심 혁명 참여자를 말한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지난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물은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회고록과 일기, 유생 등이 생산한 각종 문집, 조선 관리와 진압군이 생산한 각종 보고서 등 총 185건이다.

서훈 문제를 두고선 지자체마다 온도 차가 있다. 고창군은 "고창 출신 전봉준 장군 등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면 지역 자존감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참여자 후손은 관내에 10명가량 생존해 있고, 개정안 통과 시 유족 수당 수령 대상"이라고 했다.

2020년 5월 11일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에서 열린 '제126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5월 11일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에서 열린 '제126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읍시, 매월 10만원 유족 수당 지급 

반면 정읍시는 "동학농민혁명 헌법 전문 명시는 이학수 정읍시장 공약이지만, 시 차원에서 서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정읍시는 2020년부터 정읍에 주소를 둔 동학농민혁명 참가자 유족에게 매월 10만원씩 수당을 주고 있다. 이달 현재 74명이 받고 있다.

정읍시 관계자는 "유족 수당은 예산 문제 등을 고려해 증손까지만 주고 있다"며 "유족 대부분이 형편이 어려워 복지 차원에서 제도를 도입했지만, 관련 조례를 만든 뒤 '시 재정 상태가 나쁜데 세금을 왜 쓰냐' '임진왜란 참여자 후손도 수당을 주지 그러냐' 등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정읍시는 ▶황토현 전적 종합정비계획 수립 ▶황토현동학농민혁명 기념제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 사업 ▶고부 관아 복원을 위한 전문가 토론 등에 예산 20억원가량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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