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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15만명 몰렸다…'꿀벌박사' 30년 집념이 일군 곳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촬영한 충북 청주 낭성면 추정리 산골 메밀밭. 사진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

지난해 촬영한 충북 청주 낭성면 추정리 산골 메밀밭. 사진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

“눈꽃 정원에 온 듯”…3만㎡ 메밀밭 장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에 조성한 산골 메밀밭이 전국적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추정리 된내기골 깊숙이 자리 잡은 이 메밀밭은 ‘꿀벌 박사’ 김대립(49)씨가 30여 년 전부터 양봉 터로 가꾼 곳이다. 봄에는 유채를 심고, 여름 끝자락인 처서 무렵 메밀 씨앗을 심는다. 토종 메밀은 8월 말 파종하면, 30일이 지나 꽃이 핀다.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보름 정도 산허리를 하얗게 수놓은 메밀꽃이 장관이다.

3만㎡ 규모 추정리 메밀밭은 워낙 외진 곳이라 몇몇 사진작가만 알던 장소였다. 2020년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하면서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젊은 층이 몰렸다. 눈 서리를 맞은 것처럼 새하얀 메밀꽃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면서 금세 ‘핫플레이스’가 됐다.

지난해 촬영한 충북 청주 낭성면 추정리 산골 메밀밭. 사진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

지난해 촬영한 충북 청주 낭성면 추정리 산골 메밀밭. 사진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

‘꿀벌 박사’ 김대립 명인, 양봉 터로 조성 

김씨는 “3년 전 코로나19 시국을 겪으며 하루아침에 사진 명소로 알려지게 됐다”며 “TV 예능 프로그램 ‘바퀴달린집’ 촬영 이후 영화나 드라마 촬영 섭외도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메밀밭 주변엔 변변한 식당이 없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다. 2021년 10만명이 방문한 데 이어, 지난해 15만명이 찾았다.

이 메밀밭은 원래 꿀벌에게 먹이를 주기 위한 밀원(蜜源) 자원으로 조성했다. 밭 인근에 계절마다 꿀을 채취할 수 있는 산수유·밤나무·복숭아나무·앵두나무·보리수·모과나무 등 밀원수 20여 종을 심었다. 김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꿀벌을 기르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지자체 ‘경관보전직불제’ 사업으로 990㎡당 조성비 17만원을 지원받아 메밀밭을 가꿨다.

김씨는 2021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토종벌 1호 명인이다. 메밀밭 양봉장에서 꿀벌 400군(400만 마리)을 키운다. 9살 때부터 어깨너머로 양봉을 배웠고, 고교 시절부터 토종벌 연구를 했다고 한다. 2010년 국내 토종벌 98%를 폐사시킨 ‘낭충봉아부패병’ 발병 당시 해충방지벌통을 개발해 양봉 농가를 도왔다.

지난해 촬영한 충북 청주 낭성면 추정리 산골 메밀밭. 사진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

지난해 촬영한 충북 청주 낭성면 추정리 산골 메밀밭. 사진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

사진 촬영 장소로 입소문…전국서 발길 

발병 위험시기 일벌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여왕벌 산란을 자동 조절하는 ‘다기능벌통’도 만들었다. 저항성 토종벌 육성에 힘을 보태 초토화됐던 국내 양봉 산업이 되살아나는 데 기여했다. 김씨는 마을 주민과 함께 추정리 경관·밀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메밀꽃 개화 시작인 23일부터 메밀밭 일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연다. 밀원 사진 촬영, 메밀꽃밭 걷기, 토종벌·토종꿀 체험 등을 준비했다. 지역농산물 판매와 추정리 주민 산판소리 공연, 도예 전시도 마련했다.

추정리 산판소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 우륵이 불렀던 노동요를 이 마을 주민이 대대로 부르면서 명맥이 유지됐다고 한다. 김씨는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놨더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더라”며 “13년 전 낭충봉아부패병 확산으로 중단한 토종꿀 축제를 추정리 대표 행사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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