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적의 시크교도 암살 사건으로 인도와 캐나다 간 갈등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양국 사이에 전례 없는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對) 중국 견제의 핵심 국가인 두 나라의 갈등이 심화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CNN 방송,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이날 캐나다인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캐나다인이 제3국에서 신청한 비자도 발급되지 않는다. 로이터통신은 인도가 서방 국가에 대해 신규 비자를 전면 중단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 이는 인도와 캐나다 관계가 바닥을 쳤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加 대사관 인원 감축, 印 비자 발급 중단 맞불
아린담 바그치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뉴델리에서 취재진에게 “캐나다 주재 인도 영사관 직원들에 대한 안전 위협이 있다”면서 “캐나다인에 대한 비자(발급)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캐나다 정부의 무대책 탓에 치안 상황이 혼돈으로 이어졌다”고도 비판했다.
이번 발표는, 인도 주재 캐나다 대사관 소속의 일부 외교관들이 소셜미디어에 “(안전에 대한) 위협을 받았다”면서, 인도 주재 대사관 직원 수를 잠정적으로 감축할 것이라고 밝힌지 몇 시간 만에 나왔다. 캐나다 정부의 대사관 직원 감축에, 인도 정부가 비자 발급 중단으로 맞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디언은 캐나다가 인도의 비자 발급 중단과 유사한 조치로 맞불을 놓으면 엄청난 여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캐나다로 합법적 이민을 온 나라 1위가 인도였고, 11만8000명의 인도인에게 영주권이 부여됐다. 캐나다 대학에 유학 중인 인도 학생도 32만명이 넘는다.
이번 사태는 지난 18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캐나다 국적의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단체 지도자 하디프 싱 니자르(45)가 6월 사망한 사건의 배후로 인도 정부를 지목하면서, 양국이 외교관을 맞추방한 조치의 연장선이다.
캐나다는 인도 북부 펀자브 지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크교도가 거주하는 나라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인도계 시민은 140만~180만 명이며 이중 77만여 명(2021년 기준)이 시크교도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캐나다에는 인도 당국은 물론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수배를 받는 시크교도 분리주의자 21명이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에는 시크교도 무장단체인 ‘바바르 칼사 인터내셔널’ 지도자 라크비르 싱 란다와 ‘칼리스탄 타이거 포스’ 지도자 아르시디프 싱 등이 포함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크교도 분리주의자들은 인도 펀자브를 중심으로 인도와 분리된 칼리스탄이라는 시크교 독립 국가의 창설을 도모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캐나다 당국이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시크교 지도자들의 활동을 방관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해왔다.
외교 갈등, 경제로 확산…美 "깊은 우려"
이번 갈등은 외교 영역에서 경제 분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인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무기한으로 연기됐다. 최근 캐나다 광산회사 테크리소스의 제강 석탄 사업 지분(34%가량) 매입을 추진하고 있던 인도 철강업체 JSW스틸은 지분 매입 시기를 늦추고 있다.
CNN은 이번 사태가 확산되면서 양국 사이에 전례 없는 균열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대(對) 중국 견제의 핵심 국가인 두 국가의 갈등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문제에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캐나다의 법 집행 절차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가 캐나다와 인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