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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푸틴 회담의 다섯 가지 시사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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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성대하게 환대받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우크라이나와 동북아 평화 및 안정을 저해하는 사건이다. 역사적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북·러 관계 강화는 오히려 그들의 힘든 상황을 방증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푸틴 대통령의 김 위원장에 대한 구애는 우리에게 다섯 가지 시사점을 준다.

먼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상황이 김 위원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불참과 중국의 브릭스(BRICS) 정상회의 확대 노력 등에서 엿볼 수 있듯이, 독재 국가인 중·러는 지속적으로 서로 다른 힘의 기하학을 이용해 민주주의 국가가 지배해 온 제도를 약화하려 하고 있다.

북·러 거래는 취약한 처지 방증
독재국끼리 안보 협력 어려워
민주주의 우방 공조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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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북한이 위반해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가 대북 제재를 가하려 해도 이제 김 위원장은 중·러에 의지해 이를 좌초시킬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중·러가 북한의 핵 실험을 이전보다 더 용인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역공을 당하고 있는 푸틴은 ‘수평적 확전 전략’을 선택해 서방 세계와의 전역(戰域)을 한반도로 확대하려 할 수도 있다.

한반도로 전역을 확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푸틴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푸틴의 위험한 도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고삐가 풀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둘째, 한·미가 북·중에 절박한 양보를 한다고 해서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지정학적 긴장이 바로 반전을 맞이하기란 힘들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윤석열 정부는 한·미 사이를 갈라놓기만 했고 북한 압박을 위한 중국에 어떠한 당근도 제공하지 못한 지난 십 년간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났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갖고 있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중국의 패권 열망을 용인하는 신호를 보내면 그 지렛대가 한국에 이익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셋째, 부상하고 있는 중·러·북·이란의 ‘축’은 한·미 및 기타 민주주의 우방국과 파트너국에 잠재적인 위협 요소이지만, 이들 독재 국가들의 연대는 불신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4개국은 서로 안보협정을 맺는 것을 꺼릴 것이다. 러시아는 탄약과 외교적 지렛대를 위해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한반도 전쟁은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 혼란을 야기하고 러시아 동쪽 지역에 새로운 나토(NATO) 결성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중·러 모두 한반도 혼란으로 북한의 핵 물질이 이슬람 분리주의자의 손에 넘어가는 상황을 우려할 것이다. 따라서 이 4개국 끼리는 쿼드(Quad), 오커스(AUKUS),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같은 성숙한 상호 안보 협력이나 약속이 아마도 힘들 것이다.

넷째,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운명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우방국들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하여금 러시아와 합의에 나서도록 종용함으로써 미국이 대만과 한반도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유럽에서의 유화 정책이 아시아에서의 침략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시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글로벌 경제 제재를 받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가 똘똘 뭉친다면 러시아는 이 제재 때문에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끝으로 독재 정권이 얼마나 허약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푸틴 정권은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을 간신히 모면했고, 시 주석의 외교·국방 장관들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있고, 러시아의 경제는 처참한 수준이다. 중·러는 경제적으로 훨씬 더 심각한 이란과 북한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있다. 이런 취약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우방국들은 두려워하고 물러서기보다 인내심과 경각심을 갖고 공고하게 조율해 가야 한다. 한반도에 위험을 초래하는 짓은 더 큰 고립과 리스크만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러시아는 알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