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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 앞에선 삼성도 '을'이었다…1조원 부품 강매한 브로드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적인 대기업인 삼성전자가 ‘갑질’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미국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 앞에선 삼성전자도 ‘을’이었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든다. 삼성전자는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 연간 1조원 규모의 부품 구매를 강제하는 부당한 계약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불공정계약 삼성이 거부하자 공급 중단 

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부품 공급 장기 계약 체결을 강제한 브로드컴에 대해 시정 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은 무선통신 부품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진 사업자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퀄컴 등 경쟁업체가 따라오기 시작하자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독점 부품 계약을 강요한다. 경쟁업체로 갈아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7월2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 갤럭시S 광고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스1

7월2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 갤럭시S 광고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스1

삼성은 처음엔 불공정한 조건이라는 이유로 장기계약 체결을 거부했다. 그러자 브로드컴의 압박이 시작됐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관련 부품 공급을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했고,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모든 부품의 선적을 중단하기도 했다. 개발 및 생산단계에서의 기술지원과 일부 부품의 생산까지 중단했다.

무조건 연 1조원 구매 조건 계약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2020년 5월 삼성은 브로드컴으로부터 연간 7억6000만 달러(1조180억원)의 부품을 구매하겠다고 약속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공정위 현장조사와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자료제출 요구 등이 진행되면서 이 계약은 2021년 8월 종료됐다. 1년 2개월여간 삼성이 구매한 브로드컴의 주요 부품 규모는 8억 달러(1조71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계약 조건상 구매 액수를 맞추기 위해 필요 없는 부품까지 사야 했다. 브로드컴 부품은 통상 프리미엄 부품에만 들어가는데 보급형 모델에까지 이를 탑재한다. 연간 7억6000만 달러 구매 조건을 맞추기 위해 경쟁사에서 공급받던 부품을 브로드컴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브로드컴 부품을 구매해 삼성전자가 본 피해는 1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브로드컴은 “삼성은 ‘을’이 아닌 글로벌 대기업”이라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2020년 당시 거래 관계에선 브로드컴의 우위가 있었다는 게 공정위가 내린 결론이다.

동의의결 대신 제재…삼성, 소송 때 유리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뉴스1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뉴스1

당초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행위에 대해 제재 대신 자진 시정토록 하는 동의 의결을 하려고 했으나 최종 단계에서 기각됐다.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구제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동의 의결이 아닌 제재가 이뤄졌다.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사건을 공정위가 동의 의결로 마무리하려고 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의 의결 대신 제재로 결론이 나면서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 경우 유리하게 작용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브로드컴에서 공급받던 부품을 퀄컴 등으로 교체한 만큼 소송 걸림돌도 해소한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브로드컴의 공정거래법 위반 근거를 담은 의결서를 토대로 삼성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송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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