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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93) 춘풍(春風) 도리(桃李)들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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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춘풍(春風) 도리(桃李)들아
김유기(?~1718)

춘풍 도리들아 고운 양자 자랑마라
창송(蒼松) 녹죽(綠竹)을 세한(歲寒)에 보려무나
정정(亭亭)코 낙락(落落)한 절(節)을 고칠 줄이 있으랴
-악학습령(樂學拾零)

예술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다

봄바람에 핀 복사꽃과 오얏꽃아, 고운 모습을 자랑하지 말아라. 늘 푸른 소나무와 녹색 대를 한겨울에 보려무나, 곧게 우뚝 서 있어 당당하고 뛰어난 절개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은가. 오얏은 자두를 말하며, 세한은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혹한(酷寒)을 이른다.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모습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봄철에 앞다투어 피는 꽃들과 같다. 그러나 역경에 지조를 굽히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 모습을 추위에도 꿋꿋한 소나무와 대나무에서 본다. 훗날 제주 대정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자기를 찾아와 중국의 귀한 서책을 전해준 제자 이상적을 한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겨 칭송한 연유도 그와 같았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우리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김유기(金裕器)는 조선 숙종 때 활동했던 명창이다. 중인(中人)이나 서얼(庶孼), 서리(胥吏), 평민 출신을 이르는 여항(閭巷) 육인의 한 사람이었으며 김천택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