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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빠진 유엔총회…英·佛도 이례적 불참, P5 중 바이든만 참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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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 AP=연합뉴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 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부터 일주일간 미국 뉴욕 본부에서 열리는 제78차 유엔총회에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4곳의 정상이 불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보유국을 일컫는 ‘P5(미·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국가 정상 중에 이번 총회에 참석하는 인물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유일하다.

18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번 총회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반미 블록 연대’를 공조 중인 중·러 정상의 불참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영국·프랑스까지 불참하는 건 이례적이란 반응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수낵 총리의 불참 배경엔 기후 변화 정책을 놓고 수낵 총리가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공개 갈등을 빚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수낵 총리는 앞선 8월 “적대국으로부터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겠다”며 북해의 석유·가스 유전 100곳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정말 위험한 세력은 화석 연료 생산을 늘리는 국가들”이라며 사실상 영국을 겨냥한 비판 성명을 냈다.

이에 더해 유엔 사무국은 이번 총회 기간 구테흐스 총장이 주도하는 ‘기후 비전 정상회의’에서 영국이 제외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에 발끈한 수낵 총리가 유엔 총회를 보이콧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 총리가 총회를 건너뛴 건 2013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이후 10년 만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021년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찰스 왕세자(현 찰스 3세)를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021년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찰스 왕세자(현 찰스 3세)를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두고 영국의 전직 외교관인 알렉산드라 홀 홀은 현지 매체 기고에서 “수낵의 총회 불참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유엔 창설을 주도한 영국이 거기 안 가면 다른 나라 정상들은 왜 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총회 기간 국내 정치 일정에 집중할 예정이다. 올 초 연금개혁 시위로 미뤄졌던 영국 찰스 3세의 국빈 방문이 20일부터 사흘간 예정 돼 있고, 주 후반부에는 남부 프랑스를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불참한 건 2021년 이후 두 번째다. 당시엔 미국과 호주, 영국의 오커스(AUKUS) 결성으로 호주가 프랑스와의 잠수함 계약을 일방 파기했을 때였다.

이달 초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주최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총회에 불참했다. 그는 18일부터 열리는 국회 특별 회기에서 내년 총선에 대비한 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한·일 정상을 제외한 미국의 우방국 정상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맹탕 회의’가 되는 것 아니냔 말도 나온다. 정상들의 무더기 불참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회의에서 매번 ‘러시아 비판 성명을 내느냐 마느냐’의 도돌이표 논의가 계속된 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달 초 뉴델리 G20 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정상들이 총회 참석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9일 총회 연설에 이어 20일 안보리 공개 토론회에서도 발언할 예정이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18일(현지시간) 5일 간의 의회 특별 회기를 맞아 수도 뉴델리의 의회 앞에서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18일(현지시간) 5일 간의 의회 특별 회기를 맞아 수도 뉴델리의 의회 앞에서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프랑스의 정부 부처 장관은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에 “마크롱 대통령은 얼마 전 G20에 참석했다”면서 “프랑스 외교 정책에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었던 것이 아닌 한 총회에 매년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유엔 체제의 핵심 기능인 안보리가 중·러의 거부권 행사로 제기능을 못 하는 점도 작용했다. 안보리는 러시아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그간 안보리가 비교적 공조해 온 북핵 관련 결의안도 도출하지 못했다. 전직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세계의 중심은 동남권(아시아)으로 가고 있다”면서 “유엔 체제는 이미 김이 빠졌고 활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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