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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원조 『그림 동화』 완역본 출간…"생태찌개 덕에 번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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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 교육적 가치, 희망이나 도덕, 변하는 환경, 불가해한 삶을 담은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모든 지혜가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아요."

지난 18일 그림 동화 출간 원격간담회에 참석한 김남희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왼쪽)와 전영애 서울대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사진 민음사

지난 18일 그림 동화 출간 원격간담회에 참석한 김남희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왼쪽)와 전영애 서울대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사진 민음사

김남희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그림(Grim) 동화'를 "종합선물세트"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그림 동화』 완역본 출간에 맞춰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림 동화'는 18세기 독일 언어학자인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형제가 14년간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모은 200가지 민담 모음집이다.'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황금 거위' 등 익숙한 동화가 모두 여기서 나왔다. 원제는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지만 저자의 성을 딴 '그림 동화'로 널리 알려졌다.

『그림 동화』(1·2권, 민음사) 완역본이 출간됐다. 금박을 입힌 양장본 2권으로, 합쳐서 1700쪽이 넘는 '벽돌' 분량이다. 그림 형제의 생전 마지막 판본인 1857년 7판을 완역했다. 원어(독일어)를 영어로 옮긴 후 다시 한국어로 옮긴 중역본이 아닌 독일어 직역본이다.

그림 동화 완역본. 사진 민음사

그림 동화 완역본. 사진 민음사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괴테 연구 권위자에게 주는 괴테 금메달을 받은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남희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민음사는 "기존 번역본들은 대부분 아동 문학 번역가의 번역을 거친 것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책은 독문학 권위자 두 명이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두 명의 역자와 교류해온 동화 연구가 알프레드 메설리 전 스위스 취리히대 사회문화학과 교수가 자문을 맡았다.

메설리 교수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림 동화'는 독일어권에서 매우 위대한 책이고 언어의 아름다움이 잘 담긴 책"이라면서 "그림 형제가 채집해 정리한 수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져 동화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두 분 만큼 유능하고 경험 많은 번역가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독일 언어와 문화에 친숙할 뿐 아니라 텍스트를 다루는 데 능한 전문가들"이라고 했다.

동화 연구가인 알프레드 메설리 전 취리히 대학교 사회문화학과 교수. 사진 민음사

동화 연구가인 알프레드 메설리 전 취리히 대학교 사회문화학과 교수. 사진 민음사

메설리 교수는『그림 동화』번역 출간을 위해 전 교수와 김 교수에게 직접 러브콜을 보냈다. 메설리 교수는 2019년 한국을 찾아 전 교수의 경기도 여주 자택 '여백서원'을 방문했고, 전 교수에게 다음에 유럽에 올 때는 취리히에 꼭 들러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이후 유럽에 간 전 교수는 취리히의 메설리 교수 집에서 사흘을 머물며 김치와 생태찌개 등 한식으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전 교수는 번역 부탁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생태 김치찌개가 머릿속을 맴돌아 결국은 만만찮은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김남희 교수는 2018년 취리히에서 그림 동화 워크숍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메설리 교수로부터 번역을 제안받았다.

번역은 원어에 충실하되 '약간의 낯섦'을 살렸다. 전 교수는 "특히 의성어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며 "예를 들면 원작에선 개구리가 '악'하고 운다고 돼 있다. 이를 번역하는데 '개굴개굴' 대신 '꽉꽉'을 쓰는 식으로, 낯선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미는 평서문으로 썼다. 한국어 존댓말은 대부분 '~습니다'로 끝나 원어의 말맛을 살리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기 위해서 가장 고민한 건 본문의 어미였어요. 동화는 다 '~습니다'로 끝나는데 종결 어미가 길어서 이야기의 진행이 처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화에선 존대어를 사용하고 본문은 평서문으로 번역하기로 했어요."

그림 형제의 동화책 삽화가로 널리 알려진 화가 오토 우벨로데의 삽화 400여 점도 책에 담겼다. 그림 형제가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민담을 수집하게 된 이유, 수집 방법, 형제가 '동화 할머니'로 불리는 도로테아 피만을 만난 이야기 등도 수록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에는 똑똑한 사람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똑똑하고 선한 사람뿐 아니라 어리석고 악랄하고 의심 많은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도덕적인 판단 없이 나옵니다. 온갖 군상의 사람들과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지 지혜를 주는 책이고 2023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전영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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