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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軍 포로 잡혀갔던 퇴역 여군 "한국은 우크라의 재건 모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거라고 봐요. 한국은 우크라이나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에 우크라이나 선수단으로 참가한 '타이라'(본명 율리야 파예우스카·Yuliia Paievska·54) 선수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대회 폐회식 직전 한국 취재진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의료진으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타이라는 지난 2022년 3월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같은 해 6월 석방됐다. 공동취재단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에 우크라이나 선수단으로 참가한 '타이라'(본명 율리야 파예우스카·Yuliia Paievska·54) 선수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대회 폐회식 직전 한국 취재진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의료진으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타이라는 지난 2022년 3월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같은 해 6월 석방됐다. 공동취재단

지난 16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 '2023 독일 인빅터스 게임'에선 ‘타이라(Taira)’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선수가 대회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의 본명은 율리야 파예우스카.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 강인한 전사인 타이라라는 아이디(ID)로 더 유명한 그는 지난해 3월 전쟁에 참전했다가 러시아 군에 포로로 잡혀 출전이 예정돼있던 네덜란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회 기간 동료들이 전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석방 운동을 벌인 끝에 같은 해 6월 풀려나 올해 독일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과정이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빅터스 게임: 꺾이지 않는 심장’에 상세히 담겼다. 2018년부터 2년간 우크라이나 육군 의무병으로 마리우폴 병원에서 복무한 타이라는 전역 후 인빅터스 게임 참가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던 중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주저 없이 전장으로 향해 부상자를 돌봤다.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훈련 장면 촬영을 위해 인빅터스 재단 측으로부터 받은 보디캠은 전장의 비극적 순간을 담는 데 활용됐다. 약 2주간 촬영된 256 기가바이트(㎇) 분량 영상은 그가 러시아 군에 잡히기 전날 AP 기자에게 전달돼 세상의 빛을 봤다.

타이라는 이날 뒤셀도르프 메르쿠르 슈피엘 아레나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우크라이나를 향한 전 세계적인 성원에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매 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느끼고 있다”는 그는 특히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공통점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건 과거 한국전쟁(6·25 전쟁) 때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 것과 비슷하다. 러시아의 배신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타이라는 또 “6·25 전쟁 후 한국인이 얼마나 강한 민족인지 확인됐다”고 말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빠른 발전을 이뤄낸 점을 언급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한국을 자신들의 재건 모델로 여긴다고도 덧붙였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에 우크라이나 선수단으로 참가한 '타이라'(본명 율리야 파예우스카·Yuliia Paievska·54) 선수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대회 폐회식 직전 한국 취재진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의료진으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타이라는 지난 2022년 3월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같은 해 6월 석방됐다. 공동취재단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에 우크라이나 선수단으로 참가한 '타이라'(본명 율리야 파예우스카·Yuliia Paievska·54) 선수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대회 폐회식 직전 한국 취재진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의료진으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타이라는 지난 2022년 3월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같은 해 6월 석방됐다. 공동취재단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지뢰 탐지기·제거기를 포함해 지원을 늘려가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엄청난 양의 지뢰가 뿌려져 있다. 지뢰 탐지기·제거기는 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 더 필요할 것이다.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 한국으로부터 통신장비와 드론 등도 지원 받았으면 좋겠다.”

타이라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각국 선수단으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폐회사를 통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영웅적인 투쟁을 지지한다”며 “푸틴의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빅터스 게임 창설자 해리 왕자는 개회식에서 타이라를 호명한 뒤 “이처럼 용기 있고 회복력이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그런 에너지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타이라의 고된 구금 생활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타이라는 3개월간 러시아 군에 잡혀있으면서 신나치주의자로 몰려 고문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가 볼 때 강인함의 원천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경험에 의해서 강함이 나온다. 또 내 자신이 우크라이나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는 건데, 이를 매우 중요한 미션으로 여기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언젠가 우크라이나가 인빅터스 게임을 개최할 때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기를 꿈꾼다. 전쟁 포로를 구출하는 데 기여하고 싶고, 스포츠를 통한 재활 사업에도 참여하고 싶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인빅터스 게임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등 모두 8개 메달을 따내며 이날 폐회식을 끝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탁구에서만 4개 금메달이 나왔고, 실내 조정에서 금·은·동메달 각각 1개, 여자 육상 100m에서 은메달 1개를 수확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뒤셀도르프 메르쿠르 슈피엘 아레나에서 열린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 폐회식에서 대한민국 상이군인 선수단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뒤셀도르프 메르쿠르 슈피엘 아레나에서 열린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 폐회식에서 대한민국 상이군인 선수단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한국 선수단은 또 이번 대회 기간 활발한 스포츠 외교전을 펼쳐 관심을 모았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10일 해리 왕자를 만나 인빅터스 게임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데 이어 14일에는 인빅터스 게임 재단 관계자들과 만나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당초 한국이 목표로 한 개최 시점은 2029년 대회였지만 재단 측은 2027년 대회에 나서줄 것을 제안했다. 해리 왕자는 아시아권 국가의 첫 인빅터스 게임 유치에 관심을 보이며 한국 지지 의향을 나타냈다고 한다.

해리 왕자는 폐회식 연설에서 “여러분의 취약함을 통해, 회복력을 통해, 그리고 공유된 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며 “다음 인빅터스 게임이 열리는 2025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뒤셀도르프 메르쿠르 슈피엘 아레나에서 열린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 폐회식에서 인빅터스 게임 창시자 해리 영국 왕자가 연설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뒤셀도르프 메르쿠르 슈피엘 아레나에서 열린 열린 '인빅터스 게임 2023' 폐회식에서 인빅터스 게임 창시자 해리 영국 왕자가 연설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선수단을 이끈 대한민국상이군경회의 한태호 선수단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성과를 얻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선수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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