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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 가게'서 5조원 오갔다…강도들 타깃 된 1480곳의 공포

중앙일보

입력

“사설 경비업체 계약은 당연하고 문 잠금장치도 손봤어요.”
서울 구로동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전모씨는 지난주 가게 안 투명 아크릴판 가벽의 잠금 장치를 고쳤다. 전씨는 “작정하고 덤비면 소용 없겠지만 이런 거라도 수리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17~18일 돌아본 서울 대림동·구로동 일대 환전소 주인들은 최근 연이어 벌어진 환전소 대상 강력범죄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3일 대림동 주택가로 환전상을 불러낸 뒤 1000만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도주한 중국 국적 40대 남성을 검거했다. 대림동에선 지난 15일에도 흉기를 든 30대 남성이 환전소에서 179만원을 빼앗아 도주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 남성은 18일 구속됐다. 지난달 30일엔 평택 환전소에서 타지키스탄 국적 2인조 강도가 들이닥쳐 현금 1000만원을 강탈하는 사건이, 지난달 31일 구로동 환전소에서도 1억 2000만원 돈가방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영등포구 환전소 앞에 사설 경비 업체 마크가 붙어 있다. 김민정 기자

서울 영등포구 환전소 앞에 사설 경비 업체 마크가 붙어 있다. 김민정 기자

대림동의 환전소 주인 김모씨는 “3평 남짓한 환전소를 운영하는데 큰 돈을 들여 방범창을 설치하긴 어렵다”며 “의심되는 사람이 지나다녀도 사설 경비 업체에 한 달 10만원 정도 돈을 내는 것밖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간이벽 안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대림동의 한 환전소 주인 A씨는 “환전소 대상 강도나 절도 같은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보도되니 환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더 불안해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구로동의 한 환전소 주인 B씨는 “최근 직원들에게 ‘돈 거래는 꼭 폐쇄회로(CC)TV가 있는 가게 안에서 하라’고 교육했다”고 전했다. 가게 밖에서 거래를 하다 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잦아지자 나름대로 마련한 자구책이다.

환전을 한다며 접근해 1억원이 넘는 돈을 훔쳐 달아난 30대 중국인 남성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환전을 한다며 접근해 1억원이 넘는 돈을 훔쳐 달아난 30대 중국인 남성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환전 업무의 20% 가량이 사설 환전소를 통해 이뤄진다. 사설 환전소를 통한 환전 금액 규모는 지난해 20억 달러(약 2조 6000억원), 올해 상반기에는 38억 달러(약 5조원)로 추산되며, 2023년 8월 말 기준 관세청에 정식 등록된 전국 환전 영업자만 1480곳에 달한다.

이처럼 큰 돈이 오가지만 사설 환전소에 대한 안전규정은 없다시피 하다. 환전영업자 관련 규정을 명시해놓은 ‘외국환거래법’에는 환전소의 방범 장치에 대한 의무 사항이 없다. ‘환전영업자 관리에 관한 고시’ 제8조에서 영업공간과 전산설비를 구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설 환전소는 방범창과 CCTV 정도로만 범죄에 대비하고 있으며, 이마저 환전소 운영자 개인의 자율에 따라 설치 여부가 갈린다.

이 때문에 사설 환전소는 늘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환전소 밀집지역을 담당하는 경찰들의 설명이다. 대림지구대 소속 한 경찰은 “우리 지구대에 관할에 있는 환전소만 58곳”이라며 “평소에도 찾아가 두 명 이상이 함께 근무하라고 권유하는 등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이어진 범죄로 환전소 순찰에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추석 연휴를 앞둔 1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귀금속점·편의점 등 다른 범죄 취약 장소와 함께 환전소 밀집 지역 일대 순찰도 강화할 예정이다. 경찰청은 “업주를 대상으로 CCTV·비상벨·방범창 등 방범시설 설치를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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