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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유 감산 언제까지…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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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적 감산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키우고 있다.

올해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한 해 전 같은 기간에 견줘 3.67% 상승했다. 바로 전달인 7월(3.2%)보다 높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강도 긴축을 통해 추진해온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떨어뜨리기) 흐름이 일단 멈췄다. 가장 큰 원인은 기름값 상승이다.

올해 말까지 감산 정책 연장키로

국제유가(브렌트유)는 올 6월 23일 즈음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요즘 배럴당 94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약 석 달 새 30% 정도 뛴 셈이다. 아주 가파른 상승이다. 미국 월가의 예상 밖이기도 하다. 미 에너지컨설팅회사인 래피던의 로버트 맥널리 대표는 올 초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2023년 국제유가는 상반기엔 100달러 선까지 오른 뒤 하반기엔 70달러 선을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런 예상이 빗나간 이면에 사우디의 자발적 감산이 똬리를 틀고 있다.

“10월에 감산할듯” 예측 빗나가
국제유가 석 달 새 30%나 올라
네옴시티 짓는 데 뭉칫돈 필요
사우디발 인플레 압력 더 세져

사우디아라비아가 탈석유 차원에서 추진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재정부담을 키운다. 그래픽은 네옴시티의 대표 사업인 더 라인(The Line) 조감도. [사진 블룸버그]

사우디아라비아가 탈석유 차원에서 추진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재정부담을 키운다. 그래픽은 네옴시티의 대표 사업인 더 라인(The Line) 조감도. [사진 블룸버그]

사우디는 지난해 6월 ‘OPEC+(주요 석유 수출국)’의 핵심 파트너인 러시아와 협상해 자발적으로 감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사우디는 하루 100만 배럴, 러시아는 30만 배럴씩 줄였다. 애초 러시아는 50만 배럴 감산을 약속했다. 실제론 30만 배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서방 제재를 받고 있어 러시아 감산 파장은 크지 않다.

두 나라 감산은 OPEC+가 지난해 4월부터 하고 있는 감산과는 별개다. 이른바 원유 수출국 신성동맹으로 불리는 OPEC+ 체제를 이끄는 두 나라가 ‘카르텔 유지’를 위해 스스로 생산량을 줄인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는 한국 등에 수출할 때 적용하는 유가도 인상했다. 두바이 등의 현물시장 평균 가격에다 배럴당 3.6달러를 더 붙여 팔기로 한 것이다.

사우디·러시아는 주기적으로 만나 자발적 감산을 멈출지 아니면 이어갈지를 결정해왔다. 올해 8월 월가의 적잖은 원유 애널리스트들은 사우디가 10월 전후엔 자발적 감산을 중단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이달 9일 발표된 결과는 뜻밖이었다. 11월 말도 아닌 올해 말까지 자발적 감산을 연장하기로 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국제원유 시장에서 자발적 감산은 양날의 칼이다. 감산에 합의한 산유국이 약속을 어기면 자발적 감산을 한 나라는 돈 대고 뺨도 맞는 신세가 된다. 실제 사우디가 1990년대 초에 그런 경험이 있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합의했다. 사우디는 OPEC이란 원유 카르텔의 생산조절자(swing producer)다.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더 생산량을 줄였다.

하지만 OPEC의 다른 회원국이 감산 쿼터를 지키지 않았다. 그 바람에 시장 점유율을 잃어버렸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물론 당시 유가 하락은 OPEC 회원국의 약속 위반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국 알래스카산 원유가 급증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런 1990년대 경험을 바탕으로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사우디가 감산을 중단하고 시장 점유율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봤다. 하지만 사우디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장관은 월가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감산을 연장했다. 국제원유시장 헤지펀드 등을 향해 “조심하라!”고 경고한 대로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현재까지는 OPEC+ 참여국들이 감산 쿼터를 상당히 잘 지키고 있다. 사우디가 두려워하는 카르텔 내 배신은 없다.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중동의 이란의 원유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도 공급 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런데 사우디 자발적 감산 이면엔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정보회사인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우디가 벌이는 메가 프로젝트 때문에 고유가가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메가 프로젝트는 바로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탈석유 전략 차원에서 벌이는 거대한 토목·건축(네옴시티) 프로젝트다.

이 사업의 핵심이 바로 170㎞짜리 선형 도시인 ‘더 라인(The Line)’이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적어도 1조 달러(약 1328조원)가 투입된다. “그 여파로 사우디가 균형재정을 위한 최저 국제유가(브렌트유) 수준이 기존 추정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S&P글로벌은 분석했다.

기존 추정은 바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주요 금융그룹(채권자) 모임인 국제금융협회(IIF),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이 제시한 것이다. 이들 세 곳이 제시한 사우디 균형재정을 위한 최저 기름값은 배럴당 80~83달러 사이다. 반면에 사우디의 원유 생산·유통 원가는 배럴당 30달러대다. 사우디가 국방·복지·해외지원 등에 뭉칫돈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돈 가뭄에 시달리는 사우디

여기에다 네옴시티의 부담까지 더해진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 씀씀이가 올해 상반기에만 예산보다 18% 정도 더 늘어났다. 거대 토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예산 초과 현상이다. 그 바람에 사우디는 정부 예산 말고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 돈까지 끌어다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투입할 전망이다. PIF의 핵심 수익원은 바로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등의 지분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재정수입뿐 아니라 국부펀드 수익까지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S&P글로벌 분석대로라면, 사우디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국제유가를 배럴당 9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려 유지해야 한다. 사우디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한국시간 20일 새벽에 어떤 진단과 결정을 내놓을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