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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홀연히 떠나기 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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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이번에 어디 가세요?” 눈앞으로 다가온 긴 연휴에 다들 조금씩은 들떠 있다.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이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리라. 항공료는 세 배 이상 뛰었고, 해외여행 수요는 작년의 두 배를 넘겼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외여행 이야기를 한 것이 얼마만이던가. 집 밖으로 한 발짝 나가기도 조심스럽던 시기를 지나 이렇게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고, 모든 게 다 잘 끝난 모양이니 참으로 축하할 일이다.

정말 그런가? 참으로 다행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게 다 잘 끝났던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이라는, 반드시 하지는 않아도 되는 행위가 어려웠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위가 더 어려웠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으리라. 누군가는 기저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혔으리라. 누군가는 집안에서 보호자에게 학대당했으리라.

행복한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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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회적 재난이 그렇듯이 코로나19도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질병이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며 성공적인 방역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급박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분명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감염성 질환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지금,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잊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2023)를 쓴 연구자들은 말한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난은 발생한다. 그 속에서 어떤 이들은 세상을 떠나가고, 다른 이들은 그 지워진 존재들의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위에서 살아가게 된다. 재난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책임이 있다.” 점점 더 많은 재난이 찾아올 테고, 그만큼 책임도 더 커질 것이다. 전염병, 홍수, 태풍, 폭염, 그렇게 이어질 재난 속에서 누구도 누락되지 않도록 능숙해져야 할 것이다. 산통을 깨는 말이지만, 재난은 끝나지 않았기에.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