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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구장 ‘무쇠팔 최동원’ 형상, 월요일마다 닦는 89세 노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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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고(故)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아들을 본뜬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고(故)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아들을 본뜬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2일 부산 동래구 사직야구장 앞. 역투하는 고(故) 최동원(1958~2011) 선수 동상 앞에서 선후배 야구인이 묵념으로 그의 12주기를 추모했다. 최동원 야구교실 소속 유소년 등 야구 꿈나무들도 추모식을 찾아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 최동원의 기량과 정신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최동원은 구도(球都) 부산에서 야구 명문으로 이름 높은 경남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거쳐 1981년 당시 실업팀이던 롯데 투수로 뛰었다. 전기 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팀 우승을 이끌며 그해 신인상과 다승왕, MVP를 독식했다. 최고 시속 155㎞의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뿌리며 상대 타선을 잠재운 그의 강한 어깨는 ‘무쇠 팔’로 불렸다. 그해 캐나다 대륙간컵대회에서도 MVP를 거머쥔 최동원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지만, 1982년 롯데자이언츠가 프로야구단으로 변경되자 이듬해 롯데에 입단했다.

1984년엔 51경기에 출전해 14차례 완투하며 27승을 기록했다. 그해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는 4승 3패로 승리했는데, 최동원은 홀로 4승을 일구며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이때 그가 남겼던 “마, 함 해보입시더”란 말은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한 캐치프레이즈로 여전히 시민 곁에 남아있다.

최동원은 1989년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연습생 최저 생계비나 선수들의 경조사비, 연금 같은 최소한의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협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구단 측 강한 반발에 부딪혀 선수협 결성은 무산됐다. 이 일로 ‘괘씸죄’에 걸린 그는 친정팀 롯데에서 삼성으로 이적 당했다. 1990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그는 한화 2군 감독을 거쳐 KBO 경기감독위원 등을 지냈으나, 대장암으로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로 별세했다.

사직구장에 앞서 부산 최초의 야구 전용 경기장으로 쓰이던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앞에도 최동원 조형물이 놓여있다. 최동원의 어머니 김정자(89) 여사는 매주 월요일이 되면 이곳을 찾아 주변을 청소하고 조형물을 헝겊으로 깨끗하게 닦는다. 김 여사는 19년 전부터 서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성인과 미성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인지 및 사회적 관습 등 교육을 하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자택인 수영구 남천동에서 복지관까지는 시내버스로 굽은 산복도로를 따라 1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매주 월요일 봉사활동을 마치면 김 여사는 아들 조형물을 찾는다. 그는 “아들 모습을 보러 온 분들이 주변 쓰레기나 더러운 조형물 때문에 불편할까 봐 매주 청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형물 옆엔 1984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환호하는 최동원의 사진도 전시돼있다.

사직구장 앞 최동원 동상도 김 여사가 자주 찾는 곳이다. 매주 화~목요일 해운대구 반송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마치면 도시철도를 갈아타며 아들을 만나러 갔다. 그는 “아직도 야구복을 입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 아들인 것만 같아 먹먹해질 때가 많다”며 “(아들이 세상을 뜬지) 10년이 지나도 아들을 기억하고, 내게 용기의 말씀을 주는 시민들께 늘 기운을 얻는데 보답하는 마음으로 힘닿는 데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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