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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압박 끝에 넷플릭스, 망사용료 냈나…SK텔레콤과 전격 합의 [팩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21년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청구를 위한 반소를 제기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향하는 SK브로드밴드 측 소송인단. 사진 SK브로드밴드

지난 2021년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청구를 위한 반소를 제기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향하는 SK브로드밴드 측 소송인단. 사진 SK브로드밴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망사용료 관련 쌍방간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 4월 넷플릭스의 소 제기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인터넷 망을 구축한 통신사와 이를 이용하는 콘텐트 사업자(CP) 간 이용대가 논란은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가 고민 중인 공통 과제다. 이번 합의가 구글 등 빅테크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무슨 일이야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넷플릭스는 18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코리아에서 고객 편의를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모든 분쟁을 종결한다. 양사가 상호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취하하기로 한 것.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SK브로드밴드 모회사인 SK텔레콤의 최환석 경영전략담당은 “고객들을 위한 대승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며 “국내외 다양한 플레이어와 상호 협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게 왜 중요해

지난 6월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책임자(CEO)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 간담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책임자(CEO)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 간담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전은 글로벌 통신업계도 관심있게 지켜본 사안이다. 국내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가 승소할 경우,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트 사업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앞서 법원은 지난 2021년 6월 1심에서 넷플릭스에 ‘망사용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인도, 베트남 등은 구글, 넷플릭스 등 콘텐트 사업자가 망 투자에 기여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간 소송은 망 구축·유지를 위한 대규모 투자에서 글로벌 콘텐트 사업자의 책임을 환기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합의 배경은

두 회사 모두 3년 넘게 이어진 법적 공방에 피로감이 커졌다.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장기간 소송에 대응하며 회사 역량을 소모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왔다고 한다. 인터넷(IP)TV에서는 넷플릭스를 서비스하지 않다보니 KT·LG유플러스와의 경쟁에서 불리했기 때문.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1심에 이어 2·3심에서도 패소해 판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통신업계는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에 상응하는 비용을 SK브로드밴드에 지불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미 넷플릭스는 버라이즌, AT&T 등 미국·유럽 일부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이와 별개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개발한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OCA) 기술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OCA는 인터넷 대역폭과 사용 기기에 따라 데이터를 압축 전송해 트래픽 과부하를 방지하는 기술이다. 넷플릭스는 OCA 기술을 적용하면 영상 전송에 따른 통신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뭐가 달라지나

SK브로드밴드뿐 아니라 SK텔레콤까지 넷플릭스의 결합 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부터는 SK브로드밴드의 IPTV, SK텔레콤의 요금제뿐 아니라 구독상품인 ‘T우주’에도 넷플릭스가 포함된다. 넷플릭스가 최근 출시한 광고형 요금제 관련 상품도 내놓을 예정. 상품 구성 외에 기술 개발에도 협력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축적한 대화형 사용자 경험(UX), 맞춤형 개인화 서비스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넷플릭스에 적용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토니 자메츠코프스키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사업개발 부문 부사장은 “더욱 많은 한국 회원들에게 편리한 시청 환경을 선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망 이용=유료’ 정착될까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통신업계의 시선은 구글을 향하는 중.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건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약 30%)이다. 구글의 트래픽 점유율은 2위인 넷플릭스(약 10%)의 3배에 이른다. 현재 국회에는 망 이용대가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콘텐트 사업자는 이미 통신사들에 망사용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해외 빅테크를 겨냥한 법안이다. 내달 열리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 감사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원만한 문제 해결을 환영한다”며 “미국, EU 등 글로벌 동향에 발맞춰 제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 살피겠다”고 말했다.

해외는 어때

글로벌 통신업계 역시 대형 콘텐트 사업자를 상대로 망 이용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통신망은 구축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보수가 필요하므로 이를 통해 수익을 내는 콘텐트 사업자들도 관련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 리사 퍼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 사무총장은 지난 8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을 소수 빅테크가 차지하고 있다”며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적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텐트 사업자들이 망에 투자하는 통신사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학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빅테크가 가진 시장 영향력이 크다보니 이용대가를 받아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망사용료 법제화를 통해 빅테크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