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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 들인 목욕탕 9개월째 방치..."샤워라도 하자"는 이 마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충북 영동군 고령자 복지주택 안에 지은 공동목욕탕이 9개월째 방치 상태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영동군 고령자 복지주택 안에 지은 공동목욕탕이 9개월째 방치 상태다. 프리랜서 김성태

복지주택 안 목욕탕 영업 불가…규정 검토 안 해 

충북 영동군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주민 편의를 돕겠다며 지은 공동목욕탕이 9개월째 방치되고 있다.

건축법상 목욕탕 영업이 불가한 고령자 복지주택 안에 목욕 시설을 갖췄다가, 건물을 다 짓고 나서야 이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입주민은 “어처구니없는 행정 실수로 멀쩡한 목욕탕을 쓰지 못하게 됐다”며 군을 원망하고 있다.

18일 영동군에 따르면 영동읍 부용리에 지난해 12월 아파트 형태 고령자 복지주택이 들어섰다. 주택건립비는 LH가 부담하고, 영동군은 부지를 제공했다. 지상 12층, 2개동 규모다. 65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영구임대(전용 26㎡) 168가구와 국민임대(전용 36㎡) 40가구다. 지난 1월 입주를 시작해 현재 182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 4만4400여 명이 사는 영동군엔 대중목욕탕이 1곳에 불과하다. 인구감소 여파로 목욕시설이 갈수록 줄었고, 이에 주민 불편은 가중됐다. 전국 자치단체에서 공공목욕탕 건립이 잇따르자, 군은 복지주택을 지으면서 LH와 협의해 이곳 1층에 ‘공동목욕탕’을 짓기로 했다. 목욕탕은 유료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충북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에 지난해 12월 준공한 고령자 복지주택.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에 지난해 12월 준공한 고령자 복지주택. 프리랜서 김성태

목욕탕 건립에 4억원, “대안 없으면 철거” 

하지만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공동목욕탕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준공 직후인 지난 1월 건축법상 근린생활시설이 아닌 공동주택시설에는 목욕탕 영업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다. 부용리 복지주택은 주거시설 외에 1층에 목욕탕·체육활동실·식당·사무실 등 편의시설이 있다. 1층 복지시설 건립비 12억원은 영동군이 LH에 내야 한다.

목욕탕 건립에는 4억원 정도 들었다. 남녀 탕과 탈의실을 포함해 330여㎡ 크기다. 남자 50명, 여자 85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목욕탕을 운영하려면 제1종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1층 시설은 공동주택시설로 묶여있어 영업이 어렵다”며 “복지부와 국토부 여러 차례 질의했지만,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목욕탕 운영이 지연되자, 입주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아파트 주민 대부분은 70~80대다. 이 가운데 홀몸노인이 50% 이상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60% 이상일 정도로 대체로 형편이 어렵다. 월세는 5만~10만원 안팎을 낸다. 정운필(76)씨는 “목욕탕을 운영하려면 전기료·수도요금·난방비·인건비 등 한 달에 15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들었다”며 “이 비용을 차상위 계층이 많이 사는 입주민이 부담하기도 어렵다. 목욕탕 영업이 어렵다면, 입주자가 샤워라도 할 수 있게 운영비 일부를 군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 영동군 고령자 복지주택 안에 지은 공동목욕탕이 9개월째 방치 상태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영동군 고령자 복지주택 안에 지은 공동목욕탕이 9개월째 방치 상태다. 프리랜서 김성태

입주자 “샤워라도 하게 해달라” 

최모(78)씨는 “입주자 모집 때 아파트 안에 목욕탕을 갖췄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해놓고 여태 시설을 놀리고 있다”며 “공공시설을 지으면서 법률 검토를 제대로 안 한 영동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한 주민은 “영동군과 LH가 서로 책임을 떠밀며 목욕탕 운영에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동군은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지만, 대안이 없으면 목욕탕을 철거할 방침이다. 조도숙 영동군 주민복지과장은 “건축물대장 등재 전에라도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했어야 했지만, 이 과정이 진행되지 않았다”며 “공동주택 내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은 목욕탕 등 제1종 근린생활시설이 포함된 만큼, 법제처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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