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총선 직전 통계조작…실무진들도 "文자신감 이해 안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MBC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한 모습. 당시 문 대통령은 "집값을 잡아왔다"며 부동산 정책에 자신감을 표했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MBC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한 모습. 당시 문 대통령은 "집값을 잡아왔다"며 부동산 정책에 자신감을 표했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5일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사건’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한 감사원이 조사 중 가장 주목했던 시기가 있다. 21대 총선을 두 달 앞둔 2020년 2월부터 4월 사이다. 감사원은 부정적 여론을 우려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 추가 규제지역 지정을 늦추고, 주택 통계 사전 보고 및 조작 범위를 ‘서울 매매→수도권(서울·인천·경기) 매매’로 확대했다고 보고있다. 선거 기간 수도권 표심을 잡으려 ‘통계 마사지’로 집값을 눌렀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청와대가 2020년 2월부터 4월 2주차까지 10주간 국토부·부동산원에 수도권까지 확대된 집값 변동률을 사전 보고케 하고 상승 사유를 반복 확인하며 하락을 압박해 조작했다”고 밝혔다.

그 출발점 중 하나로 감사원이 제시한 건 2020년 2월 16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다. 그해 정부는 서울 투기과열지구 내 9억원 이상 주택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20%로 제한한 ‘2019년 12·16대책’의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서울 외곽과 경기 등 수도권 내 9억원 이하 집값이 급등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왼쪽)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7월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왼쪽)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감사원에 따르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는 수원·성남·안양·의왕·용인 등 수도권 내 20여개 지역을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대폭 확대하는 정부 안을 회의에 들고 갔다. 대부분의 규제 지역이 ‘수용성(수원·용인·성남) 벨트’라 불린 21대 총선의 접전지였다. 하지만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총선에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정부는 회의 나흘 뒤 수원과 안양 5개 지역만 조정대상으로 선정한 부동산 규제안을 발표했다. 원안보다 대폭 후퇴한 방안이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 121석 중 103석을 싹쓸이해갔다. 정부는 그 뒤 수도권 20여개 지역을 ‘투기과열 및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6·17대책을 발표하며 “초강력 대책”이라 홍보했다. 감사원은 부동산원 통계 로그 기록을 통해 선거 기간 수도권 매매 변동률이 낮춰진 조작 정황을 확보한 상태다. 감사원 관계자는 “총선 뒤엔 이미 집값이 오를 대로 올라 정책 효과가 먹히지 않았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감사원은 정부가 2020년 8월 임대인의 ‘4년 거주’를 보장한 주택 임대차 3법을 도입할 때 통계 조작 범위가 ‘매매→전셋값’으로 또 한번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임대차 3법 이후 전셋값 역시 조작된 정황이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정무적, 정책적으로 주요 시기마다 통계가 활용됐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은 조사 과정에서 집값 폭등과 통계 조작에 대해 우려를 표한 실무진들의 내부 메시지와 진술도 다수 확보했다. 그중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집값을 잡아 왔다(2019년 ‘국민과의 대화 중)’”며 자신감을 표한 발언에 대해 “무슨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2020년 10월 감사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증거인멸로 구속되자 국토부 내 분위기도 술렁였다. 실무진 사이에선 “국토부판 원전사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오갔다. 애초 통계조작에 대해 처음 우려를 표한 것도 부동산원 노조였다고 한다. 이들은 통계조작에 대한 증거를 그대로 보존해 감사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의 정책 연구포럼인 ‘사의재’는 “조작 정치 감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감사원이 문제 삼은 모든 사안은 시장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현행법상 불법인 통계 사전 보고를 인정한 건 ‘범행 자백’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