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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가정에 소총 주자"…트럼프 못지않은 공화당 대선후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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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전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이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우크라이나에 탱크가 부족하다고 했는데, 미국 모든 도시는 최근 3년간 살기 나빠졌고, 자살율·범죄율은 폭등했다. 당신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

펜스 전 부통령은 평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답을 기다리는 수백명 청중의 시선은 부담이었다.

칼슨이 "미국인 대부분이 우크라이나가 지도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며 다그쳐 묻자, 결국 펜스의 입에선 "(우크라이나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답이 나왔다,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지난달 23일 미국 밀워키에서 첫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가 열렸다. 지지율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고, 사회자는 그를 '방안에 없는 코끼리'라고 불렀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미국 밀워키에서 첫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가 열렸다. 지지율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고, 사회자는 그를 '방안에 없는 코끼리'라고 불렀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지역 행사장에서 나온 장면이다. 이 행사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화당 대선주자들 모두가 참석해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보수색 짙은 중서부 유권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극우 성향 사회자가 진행한 자리였다 해도, 오가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지난달 트럼프 없이 진행된 첫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방안에 없는 코끼리'에 공화당 후보들이 휘둘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지율에서 멀찌감치 앞선 트럼프를 신경쓰느라 소신을 접거나 비현실적인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법 리스크로 트럼프가 낙마를 하든,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로 낙점되든, 이들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공화당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그 방향이 어떻게 될지 가늠해볼 수 있는 장면들을 모아봤다.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에 내주고 전쟁을 끝내자."

인도계 미국인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오른쪽)가 지난 7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터커 칼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에 내주고, 대러시아 제재도 끝내자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인도계 미국인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오른쪽)가 지난 7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터커 칼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에 내주고, 대러시아 제재도 끝내자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현재 지지율 3위인 인도계 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가 칼슨과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바람에 "러시아를 중국의 품에 밀어 넣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막고,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도 끝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협력을 끊자는 것이다. 대신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던 자원은 미국 남부 국경을 '방어'하는 데 투입하자고 제안한다.

유엔대사 출신인 니키 헤일리 후보는 "당신이 얼마나 외교에 경험이 없는지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쏘아붙였지만, 다른 후보들도 이런 생각에 조금씩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지지율 2위의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우크라이나에 유럽 국가들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며 '무조건 지원'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카토 인스티튜트의 저스틴 로건 책임연구원은 라마스와미의 발언이 "공화당 지지층에서 인기 있는 내용"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당내 지지는 계속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미 군사시설 근처에 산 땅이 1600㎢이나 된다. 농지 구매를 금지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왼쪽)가 지난 15일 아이오와주 그랜드 마운드의 한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왼쪽)가 지난 15일 아이오와주 그랜드 마운드의 한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헤일리 전 대사가 지난 7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이 발언은 곧장 논란이 됐다. 2년 전 중국 식품업체가 노스다코타주 공군기지에서 20㎞ 떨어진 곳에 옥수수 가공공장을 세운다며 1.5㎢ 정도의 땅을 샀는데, 미 공군이 '안보 위협'을 우려하자 무산된 적 있다. 실제 조직적인 땅 매입에 대한 증거는 없었다.

헤일리가 언급한 1600㎢는 중국인이 미국 내 소유한 농지 전체 면적이다. 주변에 군 기지가 있다는 증거는 없고, 외국인이 보유한 전체 농지의 0.9%에 불과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전직 유엔대사가 상황을 과장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라마스와미는 한술 더 떴다. 그는 2028년 미국이 대만으로부터 '반도체 독립'을 하면 더는 대만해협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대만에 전미총기협회(NRA) 지부를 세운 뒤, 각 가정에 AR-15(돌격 소총)을 지급하고 사용법을 교육하겠다"고 CNN에 밝혔다. 총기소유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2조를 대만에 '수출'해 중국 침략을 막겠단 식이다.

공화당 내에서 워낙 대중국 강경론이 인기다 보니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디샌티스 주지사 역시 "중국으로부터 경제 독립"을 선언하며 "훔쳐간 지식재산에 의존하는 상품은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어떻게'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WP는 전했다.

"우리는 학생이 아니다. 토론을 하자."

지난달 23일 열린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오른쪽)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논쟁을 하고 있다. 이날 디샌티스 주지사는 "인간의 행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냐"는 사회자 질문에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열린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오른쪽)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논쟁을 하고 있다. 이날 디샌티스 주지사는 "인간의 행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냐"는 사회자 질문에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사회자가 "인간의 행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어보라"고 요구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다른 후보들이 반응하기 전, 이같이 말을 가로채며 손들기를 거부했다.

그의 주지사로 재임 중인 플로리다는 지난해 허리케인 이언으로 150명이 숨졌고, 올해는 이달리아로 2조원의 피해를 냈다. 과학자들은 기상 이변으로 바다가 뜨거워진 것을 대형 허리케인의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당 분위기상 디샌티스가 이를 곧이곧대로 인정하기 힘든 것이다. 최근 WP-메릴랜드대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성향 응답자 가운데 '기후변화가 극심한 더위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35%에 불과했다. 민주당 성향 응답자 사이에선 85%였다.

그러자 토론회에서 라마스와미는 아예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못 박았고, 청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뒤풀이 파티에선 그조차 "사실 기후 변화가 진짜라고 믿는다"고 털어놨다는 CNN의 보도가 나왔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백신 접종을 적극 장려한 몇 안 되는 공화당 인사인 애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는 칼슨과 인터뷰에서 "백신을 몇 차례 맞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머뭇거리다 칼슨에게 "당신은 그럼 몇 차례나 맞았냐"고 되물었다.

칼슨은 곧장 "제로(0)"라고 답했고, 청중들은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후보들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지지율의 늪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토론회가 진행될수록 더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보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