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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20조, 그런데도 "더 주자"...정치권 '700만 표의 유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년 정부의 기초연금 예산이 2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보다 9% 넘게 늘면서다. 10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하면 4배 수준이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주는데, 지급 구조상 고령화 심화로 재정 부담이 치솟고 있다.

수급 대상 700만명, 계속 증가 예정

12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기초연금 예산으로 20조2000억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기초연금은 처음 제도가 도입된 당시(2008년 기초노령연금) 10만원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대선을 치를 때마다 복지 공약으로 등장하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20만원, 문재인 정부에서 30만원으로 올랐다. 기초연금액은 물가상승률만큼 해마다 늘어나는데, 내년 지급액은 올해(최대 32만2000원)보다 3.3% 오른 최대 33만4000원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2014년 435만명이었던 기초연금 수급자는 내년엔 700만명에 육박할 예정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2030년에 65세 이상이 1306만명, 2050년엔 19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봤다. 대상자가 이 나잇대의 70%로 고정된 기초연금 특성상 2030년이면 수급자는 914만명, 2050년은 1330만명으로 계산할 수 있다. 앞서 국민연금연구원은 기초연금 재정소요액이 2050년이면 125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초연금의 지급 구조가 재정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기초연금을 받는 대상은 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 하위 70%로 고정돼있다. 정부는 매년 소득과 재산·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수급자 ‘선정기준액’을 정하는데, 월 소득인정액이 이보다 낮으면 기초연금을 받는다. 노령층 빈곤 문제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선정기준액이 매년 오르다 보니 소득이 적지 않은 노인에게도 돈이 지급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지난해 소득인정액이 180만원을 넘긴 노인 단독가구는 지난해 기초연금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는 새로운 기준액인 202만원보다 적기 때문에 기초연금을 받는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국회예산정책처는 ‘기초연금제도 및 수급자 특성 변화 분석’ 보고서에서 “현행 제도대로 가면 정부 지원 필요성이 낮은 노인에게도 급여가 지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정처에 따르면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은 2015~2023년 연평균 10.2% 증가했다. 2014년엔 월 소득이 87만원 미만인 고령층만 기초연금을 받았는데 2023년엔 202만원 미만까지로 대상이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1ㆍ2인 가구의 기준 중위소득액의 평균 증가율은 3.3~3.6%에 그쳤다. 예정처는 “기초연금 수급자의 소득ㆍ자산 증가 속도가 다른 복지급여 수급자들보다 더 빠르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돈 안 내도 받는 기초연금, 형평성 지적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민연금 평균 연금액 대비 기초연금액은 2014년 41.8%에서 올해 52.2%까지 오르는 등 그 격차가 꾸준히 줄고 있다.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간 돈 한 푼 내지 않았는데도, 매달 국민연금을 낸 가입자가 받는 금액의 절반 이상을 받는다는 얘기다. 예정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급여가 비슷해져 국민연금 장기가입 유인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수급 대상이 70%에 달하다 보니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기초연금을 받게 됐다”며 “기준 중위소득 미만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수급 대상자를 축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대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제도가 아닌데도 정치권에선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회 계류 법안 23개…전부 “더 주자”

가장 큰 장애물은 선거다. 700만명 이상에게 돈을 주는 제도다 보니 정치권에선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혜택을 줄였을 때의 반발을 우려한다. 선거 때면 기초연금 인상 공약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 모두 기초연금 40만원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9일까지 국회에 계류된 기초연금법 개정안은 총 23개다. 하나같이 연금 수급 대상을 확대하거나 연금 지급액을 늘리자는 내용이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기초연금 대상을 2026년까지 모든 고령층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포함해 70%인 기초연금 대상을 100%로 늘리자는 법안만 3개다. 여당인 박형수 의원은 공무원연금ㆍ사학연금 수령자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기초연금 수급자를 줄일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당장 700만표가 걸려 있는데 제도를 축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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