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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방임이냐 국가 개입이냐|미에 경제 정책 논쟁 한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경제와 비교할 때 경쟁력 면에서 이미 뒤쳐진 것이 거듭 확인된 미국경제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한처방을 놓고 요즘 미 경제학자·경제정책담당자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그 논쟁은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을 북돋우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나 개입이 필요한가 여부와 만일 필요하다면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하느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에서는 그 동안 일본경제의 신화를 분석하며 일본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에 있다는 시각이 보편화 돼 있었다.
즉 미국은 개개 기업간의 무한 경쟁 체제 때문에 불필요한 소모전을 치러야 하는 반면 일본은 정부가 사기업 활동에 개입하여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게 하기 위해 기업간의 교통 정리도 하고 지원도 해준 결과 지금과 같은 수준에 달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미국도 주요 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같은 지원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경쟁력과 관련된 통설적인 시각이었다.
현재 경제 전략 연구소장이며 과거 미 통상 협상 대표 일원으로 활약했던 프레스토비츠씨가 지난 88년 내놓은 『무역현장-우리는 어떻게 일본에 추월 당했나』라는 책자도 이러한 입장에서 집필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와 정반대논지의 책이 출판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마이클 포터 교수는 최근 『국가에 있어서 경쟁력의 이점』이라는 저서에서 미국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나 개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자생적인 경쟁력을 기르는 길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지 유 에스 에이 투데이지는 이러한 두 시각간의 논쟁이 미 경제의 최대 이슈라며 두 학자의 주장을 나란히 싣기도 했다.
포터 교수는 한마디로 한 국가의 번영은 기업의 생산성에 달려 있으며 이 생산성은 기술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과 함께 그 핵심이 되는 기술혁신은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정부의 가장 효과적인 역할은 기업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경우 오히려 경쟁력을 후퇴시킬 뿐이므로 경쟁력을 이유로 한 기업합병이나 기업간의 연대 등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을 보는 눈도 두 시각간에다를 수밖에 없다.
프레스토비츠씨는 일본은 산업구조조정위원회와 같은 정부기구가 있어 경쟁력이 없는 분야는 도태시키고 경쟁력이 있는 분야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더 강력히 지원하며 같은 업종간에는 담합을 통해 해외에서의 경쟁을 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포터 교수는 일본경제의 성공에서 정부지원요소는 10%밖에 안되며 90%는 경쟁을 통한 생산성향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자동차분야만 하더라도 미국은 새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려면 15년이 걸리는데 일본은 그때그때 고객의 선호에 따라 과감히 기술혁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포터 교수는 기업 활동에서 정부의 역할이란 어느 수준에 이르면 오히려 생산성 향상에 역행하며 선진국일수록 그 시점이 빨리 온다며 가능한 한 정부의 개입이 적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프레스토비츠씨는 모든 나라가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경쟁력 찬양은 이상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슈퍼컴퓨터·항공·생명공학분야 등 다른 나라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미국도 정부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논쟁자체가 흑백으로 귀결될 성질이 아니므로 어느 한 쪽의 주장에 대해 일방적인 지지가 있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생산성향상을 위해 정부의 조정·지원, 기업간의 경쟁이 어느 수준에서 결정돼야할지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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