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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저하고 나타날 것" 전문가 "드라마틱한 반등 없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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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06면

민·관 엇갈린 경기 전망

경기도 평택항의 야적장에 주차된 수출용 차량들. 한국의 1~7월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다. [뉴스1]

경기도 평택항의 야적장에 주차된 수출용 차량들. 한국의 1~7월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다. [뉴스1]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중요한 경제 지표인 경상수지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경제 반등론을 조심스레 제기 중이다. 지난달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7월 경상수지는 35억8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3개월 연속 경상수지가 플러스(5월 19억3000만 달러, 6월 58억7000만 달러)를 나타냈다. 지난해 7월 경상수지(17억 달러)보다도 2배 이상으로 개선됐다. 앞서 한국은 올해 들어 잇단 마이너스(-) 경상수지로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1월 -42억1000만 달러, 2월 -5억2000만 달러, 4월 -7억9000만 달러 등으로 적자가 이어졌다.

수입이 수출보다 줄어든 ‘불황형 흑자’

이동원 한은 경제금융통계부장은 “하반기 첫 달의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분명하게 보여줬다”며 “기존 ‘상저하고’ 전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7월에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상반기 저조했던 경제가 하반기에 고조되는 상저하고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 올해 경상수지 전망치를 기존 전망치보다 20억 달러 상향 조정한 230억 달러로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공식석상에서 “앞으로도 경상수지가 흑자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15일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9월호에서도 두 달 연속 ‘경기 둔화 완화’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동원 부장은 “경상수지가 저점에서 벗어나 회복 국면에 진입한 것”이라며 “6월 무역수지가 16개월 만에 흑자 전환하는 등 흐름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정부가 이처럼 하반기 경제 반등을 예측하는 이유는 경상수지를 이루는 네 항목(상품수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이전소득수지) 중 핵심인 상품수지가 가파르게 개선되고 있어서다. 한국의 상품수지는 6월 39억8000만 달러, 7월 42억8000만 달러 등으로 4개월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7월 서비스수지가 -25억3000만 달러로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과 대조된다. 주력 수출품 중 하나인 자동차 수출액이 7월 56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한 영향이 컸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 등을 중심으로 7월 29억2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본원소득수지는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금액과 외국인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금액 간 차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부의 장밋빛 전망이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런 낙관론을 펼친 정부와 다소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상수지가 악화하지 않았을 뿐,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경제 반등의 본격 신호탄이라 보긴 어렵다”며 주요 수출 업종 중 반도체의 예를 들었다. 실제로 7월 반도체 수출액은 7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3.8% 감소, 자동차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수출이 잘 됐다기보다 수입이 줄어든 데 따른 ‘착시’도 존재한다. 7월 전체 수출액은 50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4% 감소하면서 11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이와 달리 7월 전체 수입액은 487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5.4% 줄어들면서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예컨대 원자재 수입액은 35.7% 감소했는데 이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데 따른 것이다. 니켈 가격은 올해 초 t당 3만 달러대에서 7월 2만 달러대 초반으로 급락(영국 런던비철금속거래소)했고 옥수수 가격은 올해 초 부셸당 600센트대 후반에서 7월 한때 400센트대 후반까지 떨어졌다(미국 시카고거래소). 이렇게 수입액의 감소 폭이 수출액의 감소 폭보다 큰 상황을 ‘불황형 흑자’라 일컫는다. 호황이라 수출이 잘 돼서 경상수지가 개선된 게 아니라, 불황 여파로 수입이 줄어서 경상수지가 개선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의 경기 회복이 더뎌지고 있는 점도 한국으로선 달갑지 않다. 중국은 지난해 말부터 ‘제로 코로나’의 봉쇄 정책을 풀고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효과가 시원찮다. 중국 국가통계국 등에 따르면 중국의 7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4.5% 감소,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17.2%)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내수 시장 침체도 두드러진다. 중국의 7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에 그쳤는데 이는 당초 시장 예상치인 4.5~4.8%에 크게 못 미친 수치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는 1분기 기준 19.5%로 여전히 높으며, 반도체 수출은 절반이 중국에서 발생할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중국의 경기 부진이 심화할 경우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5%로 낮췄다. 다른 지표도 신중론에 힘을 실어준다. 12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외감 기업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은 -4.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2020년 2분기(-10.1%) 이후 최저치다. 제조업은 석유화학(-17.1%)과 기계·전기전자업(-15.4%) 등의 부진으로 -6.9%에 그쳤고 비제조업 역시 운수업(-14.8%) 등의 부진으로 -0.7%를 기록했다.

KDI, 올 성장률 1.8%서 1.5%로 낮춰

창밖으로 보이는 부산항. 최근 경상수지 흑자는 수입액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연합뉴스]

창밖으로 보이는 부산항. 최근 경상수지 흑자는 수입액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연합뉴스]

이성환 한은 경제통계국 기업통계팀장은 “석유화학 업종은 주요 생산국의 설비 증설과 글로벌 성장세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가 작용했다”며 “전기전자업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부진과 서버 수요 약세에 따른 반도체 수출액 감소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매출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다. 올해 2분기 국내 외감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3.6%로 전년 동기(7.1%)에 비해 급락했다.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2분기 8.6%에서 올해 2분기 2.9%로 떨어질 만큼 심각하다. 반면 기업들의 차입금 의존도는 올해 2분기에 26.0%로 2016년 1분기(26.2%) 이후 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제 반등론이 아직 이르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성태윤 교수는 “남은 하반기 동안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 경상수지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중국의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한 드라마틱한 반등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리스크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이 생산량을 감축하면서 6월 배럴당 60달러대 후반이던 국제 유가는 이달 80달러대 후반(서부텍사스유(WTI), 미국 뉴욕상업거래소)까지 치솟은 상태다. 상품수지에 그만큼 악영향이 따를 수밖에 없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유가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수입액 증가를 자극하고,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악영향이 이어질 경우 (한국은) 남은 하반기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이후 한국 GDP 5.9% 성장, OECD 중위권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쟁국 대비 경제에 얼마나 타격을 입었을까. 또 이를 얼마나 극복했을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를 보여주는 지표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OECD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OECD 회원국 중 36곳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팬데믹 직전인 2019년 4분기 대비 평균 5.1% 성장했다. 그중 한국은 같은 기간 5.9% 증가해 반등 폭이 OECD 회원국 중 중위권에 그쳤다. 올해 2분기 GDP 집계가 안 된 룩셈부르크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OECD 회원국 36곳 중 16위다.

특히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커서 성장률 집계에선 상대적으로 불리한 미국(6.1%)보다도 반등 폭이 작았다. 한국의 연간 GDP 성장률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이후 2017년까지 약 20년간 미국을 앞섰다. 하지만 2018년 2.9%로 같아지더니 2019년엔 미국(2.3%)에 뒤처진 2.2%를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 팬데믹 이후로도 사실상 미국만 못한 경제 성장을 했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에 대해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접어들었다”며 앞으로도 급격한 분위기 반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한 바 있다.

OECD 36개 회원국 중 팬데믹 이전 대비 경제의 반등 폭이 가장 큰 국가는 아일랜드(28.7%)였다. 튀르키예(23.3%), 이스라엘(16.6%), 코스타리카(11.3%), 콜롬비아(10.6%), 칠레(9.8%), 슬로베니아(9.5%),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각 8.6%)가 그 뒤를 이었다. 호주(8.0%), 그리스(7.4%), 폴란드(7.2%), 리투아니아(7.1%), 네덜란드(6.2%) 등도 한국보다 반등 폭이 컸다. 반면 일본(3.0%), 이탈리아(2.1%), 프랑스(1.7%), 스페인(0.4%), 독일(0.2%), 영국(-0.2), 체코(-1.0%) 등은 경제 회복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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