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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전시 상황으로 여겨 삶 터전 복구하듯 접근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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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25면

[지혜를 찾아서]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

조인원 이사장은 “경희학원은 ‘전인적 참여를 위한 고등연구’라는 전환기획을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조인원 이사장은 “경희학원은 ‘전인적 참여를 위한 고등연구’라는 전환기획을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문제의 전성시대다. 기후변화 문제, 인공지능(AI) 문제, 미확인공중현상(UAP) 문제…. 문제에는 ‘문제 전문가’가 필요하다.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겸비했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과에서 ‘산업 재편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자 교육행정가, NGO 운동가, 저술가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도 지구환경 문제를 걱정하는 고민 많은 시민이기도 하다.

21일 유엔이 정한 ‘세계평화의 날’ 행사

2022년 9월 열린 제41회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 Peace BAR Festival에서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이 ‘실존의 순간, 전일사관의 새 물결’이라는 주제로 기념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 경희학원]

2022년 9월 열린 제41회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 Peace BAR Festival에서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이 ‘실존의 순간, 전일사관의 새 물결’이라는 주제로 기념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 경희학원]

9월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평화의 날’이다. 경희학원은 해마다 ‘세계평화의 날’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한다. 올해의 행사 주제는 ‘평화 혹은 붕괴, 변곡점에 선 지구사회’이다. 왜 그는 ‘지구사회’가 평화냐 붕괴냐의 기로에 섰다고 보는 것일까.

조인원 이사장을 지난 11일 경희대 본관에서 만났다. 이 인터뷰 기사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인류의 중대 문제에 대한 임시 결론(tentative conclusions) 보고서’이기도 하다.

전 지구적 문제가 산적했다. 모든 문제에 공통 분모 같은 것이 있을까.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해 옮기고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접근 경로와 방법론에 따라 문제의 인식·이해·설명이 달라진다. 이것이 문제의 스펙트럼이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풀어 가기 위해서는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 위기 문제에는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 등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세계원자과학자협회 소속의 과학자·전문가들까지 다양한 경로들을 열어놓고 문제에 다가서면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기후변화의 결과가 무엇이고, 인류에게 허용된 시간이 얼마인지를 파악하게 된다. 이를 통해 대처방안과 실행 방법도 더 잘 모색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현재 인류가 마주한 긴급한 도전 과제다. 평시 과제처럼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해답이 없을 것이다. 전시 상황으로 이해하고, 전후에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00년)’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지구인은 기후변화, 인공지능(AI)의 출현 등 ‘위기의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을 맞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2의 축의 시대’인가 아니면 ‘제2의 과학혁명’인가.
“‘축의 시대’가 상징하는 정신세계는 현대 산업사회를 표상하는 과학기술과 분리될 수 없다. 정신세계와 과학기술을 길항 관계나 대척 관계로 인식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우리는 이 둘을 보완하면서 인간 특유의 미래를 위한 ‘향상의 과업’을 지향해야 한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결여할 때마다 수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었다. 인류가 경험한 기근과 굶주림, 갈등과 전쟁, 야만과 광기의 역사는 모두 정신과 물질, 의식과 과학의 전일성(全一性)이 깨어져 발생했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난제들, 기후·환경·생태의 붕괴 가능성, 잦아지는 치명적 팬데믹, 풍요 속의 빈곤, 대량 살상의 광기, 특히 균열적이고 분열적인 현실 정치의 문제 같은 것들은 모두 둘이면서 하나인 이 정신세계와 과학기술의 인위적 분리가 만들어낸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킬 것,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것은?
“무엇보다 기성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시민은 주권 국가 중심의 협애(狹隘)한 세계관에서 탈피해야 한다. 시민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자. 지구 행성 차원의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국가와 정치가 변하려면 사회 인식, 국제사회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국가와 정치의 권력 기반인 유권자의 의식, 국민 의식의 흐름이 달라지면 국가와 정치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바야흐로 AI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서광일까, 먹구름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양면적이다. 어쩌면 선택을 둘러싼 복수의 얼굴 너머 다중적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논의를 좁혀보자. 흔히들 ‘위기란 기회’라고 하지만, 역으로 기회란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소망하고 공감하는 미래 만들기를 위해선 위기가 기회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인간은 희망하는 존재다. 희망이 부재한 삶이란 죽은 생명과 같다. 우리의 현시점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바위를 언덕 위로 끝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선택의 여지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심층 적응(Deep Adaptation)’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뜻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기후 위기에 관한 논의가 분분한데, 증거를 확보한 후에 행동에 나선다면 때를 놓치게 된다. 위기는 이미 재앙이자 우리의 현실이다. 재앙의 현실에 비추어 오늘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한마디로 ‘재앙공동체’란 인식을 갖고 협력해 삶을 다시 기획하자는 논의이다. 기존 인류의 지식과 지혜뿐 아니라, 스스로 생성하는 양자 과학의 몰(沒)경계성, 통시적·공시적 정보와 지식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 AI의 등장은 인류문명의 향배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AI가 던지는 난제는, 위기를 천재일우의 기회로 삼아 대전환을 이뤄내야 할 인간, 어쩌면 지구상의 ‘마지막 인간’이 될지도 모를 현생 인류의 생사를 가를 문제일 수 있다.”
인공지능 외에 또 하나의 AI, 즉 외계지능(Alien Intelligence)이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7월 열린 미국 하원 ‘미확인 비행현상(UAP) 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온 미국 정보요원 출신의 예비역 공군 소령 데이비드 그러시는 미국 정부가 ‘미확인 비행물체(UFO)’와 외계인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락한 비행체를 회수해 분해하고 모방하는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프로그램을 수십 년 진행했다는 증언도 했다. 오랜 기간 UFO는 금기시되거나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실은 미 국방부 내에 UFO를 연구하는 여러 조직이 활동해왔다는 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인문적 상상과 반증을 염두에 둔 열린 과학적 사유, 이 둘 사이를 오가는 영원한 변증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전환기획’ 구상, 내년 공식 출범 채비

사학을 이끌고 있는 교육자로서 대변혁 시대에 대비해 특별히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가.
“경희학원은 항상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전인적 참여를 위한 고등 연구(Advanced Studies for Holistic Engagement)’라는 전환기획을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전환기획의 기조는 우주와 자연, 인간과 문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전일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더 나은 삶과 인간 존재의 미래를 찾아 나서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다. 내년 공식 출범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 과정을 계획하면서 내가 소망했던 것은 하나다. 위기에 처한 미래를 위해, 특히 더욱 험난한 삶의 여정을 걸어야 할지 모를 미래세대를 위해 학술·교육·의료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경희학원이 매년 ‘세계평화의 날’을 마치 학교의 ‘명절’처럼 기리는 이유는.
“1981년 제36차 유엔 총회에서 세계평화의 날이 제정됐다. 이 과정에 경희학원의 기여가 컸다. 당시 지구사회에는 신냉전 기류가 흘렀다. 경희학원의 전통은 크게 ‘문화세계의 창조’ ‘학문과 평화’의 여정으로 집약된다. 우선, 교육·학술기관으로서 학문과 교육 고유의 소명을 실천한다. 더불어 학문과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과 ‘생명의 존엄’을 향한 길을 모색한다. 경희는 이 과업을 이루려고 인간의 가치·윤리·문화의 세계를 켜켜이 쌓아가고자 노력한다. 교육은 국내·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다. 언제부터인가 학문과 교육을 실용성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자리 잡았다. 물론 실용성이 반드시 부정적인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실용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목표란 결국, 개인과 이웃, 사회와 세계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영원한 화두 속에서 스스로 부여하는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답해가는 과정이다. 경희학원에서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그 의미들을 되새겨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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