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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루만지는 기술… 두나무 '디지털 치유 정원'으로 떠나는 사람들

중앙선데이

입력

디지털 치유 정원 2호점이 설치된 서울재활병원에 입원중인 환자가 국립세종수목원을 촬영한 VR 영상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디지털 치유 정원 2호점이 설치된 서울재활병원에 입원중인 환자가 국립세종수목원을 촬영한 VR 영상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소방 공무원은 직무 특성상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수면장애 등 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통계적으로 연평균 5.9회 이상 참혹한 현장에 반복해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심신 회복을 위해 다양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즉시 출동해야 하는 업무 특성과 전담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마음 건강을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나무는 지난 5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치유 정원’을 오픈했다.

‘디지털 치유 정원’은 PTSD, 트라우마 등을 겪고 있는 소방 공무원과 거동이 불편한 교통약자의 심리를 치유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다. 국립세종수목원·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다양한 모습을 VR 콘텐츠로 제작해 직접 수목원, 휴양림 등 공공시설을 방문하지 않고도 나무를 통한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디지털 치유 정원은 금천소방서(1호점)와 서울재활병원(2호점)에 차례로 조성됐다. 1호점인 금천소방서의 경우 빠른 출동을 위해 소방차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방 공무원의 상황을 고려해 차고와 바로 연결된 곳에 치유 정원을 조성, 활용성을 높였다.

지난 8월 10일 두나무,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서울대 지능정보사회정책연구센터(이하 CISP),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함께 개최한 ‘디지털 치유 정원 미래심포지엄’에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서울대 CISP 선임연구원 황한찬·이민상 박사 등 국내 석학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사용자 데이터 분석 결과와 실제 경험 사례를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공공부문에서 VR 기술 활용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디지털 치유 정원’과 유사한 사례는 전무했다”며 디지털 치유 정원의 혁신적인 시도와 선도적인 역할에 대해 주목했다. 국립수목원 등에서 제공하는 치유 효과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직접 장소에 방문해야 한다는 접근성의 제약이 있는데, 이를 가상공간으로 확장해 보다 많은 사람이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기존 수목원 방문 경험이 있는 사용자에겐 첫 방문 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세한 경관까지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용자 특성에 따라 이동 속도나 설명 등을 맞춤형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유 정원 사용자 데이터 분석 결과 발표자로 나선 서울대 CISP 선임연구원 황한찬 박사는 “디지털 치유 정원 VR 프로그램을 입원 환자용, 소방관용 등과 같이 수요자 집단 특성에 맞게 제작할 때 실험 참여자의 부정적 감정이나 직무 스트레스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해 시선을 모았다. 적재적소에 개인화∙맞춤화된 VR 치유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고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심포지엄에서는 최근 가족을 떠나보내 심적으로 힘든 과정에서 디지털 치유 정원을 더욱 자주 찾게 됐다는 소방공무원 A씨의 사연도 소개됐다. 그는 “직업 특성상 편히 휴가를 보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실제 수목원을 촬영한 영상을 VR로 감상하며 기분 전환이 되고 마음도 치유됐다”고 말했다.

하반신 장애로 평소 휠체어를 이용하는 환자 B씨는 타인의 도움 없이도 원하는 곳을 생생하고 편하게 경험할 수 있어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누군가가 이끌어주는 대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혼자 수목원을 찾아간 듯 편하게 구경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기뻐했다.

디지털 치유 정원은 오랜 입원 생활로 지친 이들에게 작은 활력소가 됐다. 1년 가까이 입원 중인 C환자는 “1주일에 한 번 외박하는 것 외에는 마땅히 휴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병원 내에 디지털 치유 정원이 있어 이용하기 편했다”며 “앞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더욱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고로 심리적 후유증을 겪는 이들에게 새로운 안식처가 돼주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입원하게 된 D환자는 “사고 후 나를 인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병원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디지털 치유 정원을 경험한 후에 가상 공간이었지만 직접 수목원에 간 듯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해소됨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디지털 치유 정원은 자연과 기술의 결합을 넘어, 공공부문에서 가상현실 기술이 갖는 새로운 시너지와 가능성을 보여줬다. 맞춤형 콘텐츠 제공과 사용자 경험 개선을 통해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에게 찾아갈 계획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디지털 치유 정원의 내일에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조효민 기자 jo.hyo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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