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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뜨겁다…‘소방관 파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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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마흔두 살의 나이에 로드FC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둔 신동국은 현재 충주소방서 소방위로 근무 중인 15년 차 현역 소방관이다. 2017년 데뷔 후 늦깎이 격투기 스타로 떠오른 그를 동료들은 ‘수퍼 소방관’이라 부른다. [사진 로드FC]

마흔두 살의 나이에 로드FC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둔 신동국은 현재 충주소방서 소방위로 근무 중인 15년 차 현역 소방관이다. 2017년 데뷔 후 늦깎이 격투기 스타로 떠오른 그를 동료들은 ‘수퍼 소방관’이라 부른다. [사진 로드FC]

“매일 화마(火魔)와 싸우다 보니 주먹은 두렵지 않습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화끈한 승리를 거둔 ‘소방관 파이터’ 신동국의 말이다. 신동국은 지난달 26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065 라이트급(70㎏급) 토너먼트 리저브 매치에서 열다섯 살이나 어린 한상권(27)을 맞아 1라운드 4분5초 만에 TKO승을 거뒀다. 신동국은 2연승을 달리며 종합격투기 전적 5승5패를 기록했다.

신동국은 “나는 완벽주의자다. 격투기 선수는 나의 ‘부캐(부캐릭터)’인 셈인데 격투기에서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근무 도중 틈틈이 훈련한 끝에 거둔 승리여서 더욱 값지다”고 밝혔다.

신동국은 15년 차 현역 소방관이다. 현재 충주소방서에서 소방위로 근무 중이다. 그는 2009년 ‘전국 소방왕 선발대회’ 체력 부문에서 우승했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수퍼 소방관’이라고 부른다. 그의 배엔 복근이 선명하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로드FC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둔 신동국은 현재 충주소방서 소방위로 근무 중인 15년 차 현역 소방관이다. 2017년 데뷔 후 늦깎이 격투기 스타로 떠오른 그를 동료들은 ‘수퍼 소방관’이라 부른다. [사진 로드FC]

마흔두 살의 나이에 로드FC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둔 신동국은 현재 충주소방서 소방위로 근무 중인 15년 차 현역 소방관이다. 2017년 데뷔 후 늦깎이 격투기 스타로 떠오른 그를 동료들은 ‘수퍼 소방관’이라 부른다. [사진 로드FC]

신동국이 소방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2006년 교통사고를 목격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아버지 차를 타고 고향인 충주 시내를 달리다 트럭 전복 사고를 목격했다. 신동국의 아버지는 즉시 차에서 내려 트럭으로 달려가 운전자를 구해냈다. 신동국은 이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끔찍한 사고 현장을 마주하고는 무서워서 몸이 얼어붙었다. 특전사 시절 이라크 파병까지 다녀와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아버지 같은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때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구조 작업을 하는 모습을 봤다. 소방관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신동국은 이 사고를 계기로 소방관 시험 준비를 했다. 그는 교재를 구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무작정 외웠다. 그 결과 2008년 소방 구조특채 전형에 합격했다.

소방관이 된 신동국은 첫날부터 무시무시한 압박감과 싸웠다. 신동국은 “사고 현장은 끔찍하다. 수십 구의 시신을 수습할 때도 있었다. 구조 활동을 펼치다 순직한 소방관도 많다. 젊은 소방관이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래서 적잖은 소방관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사건·사고 등 충격적인 상황을 경험한 뒤 나타나는 불안·우울 등의 부적응 현상이다. 젊은 나이에 소방관이 된 그도 PTSD를 피할 순 없었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간신히 잠에 들어도 악몽을 꿨다. 우울증까지 겹쳐 정신과까지 찾았다. 신동국은 “건강이 나빠지고 짜증이 많아지면서 주변 사람들과 자주 다퉜다. 이러다 정말 큰 일 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울증을 날려버리기 위해 2016년 격투기를 시작했다.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격투기 입문 1년 만인 2017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36세에 데뷔해 4경기에서 3승을 거두며 ‘늦깎이 스타’로 떠올랐다. 방화복에 헬멧을 착용한 채 링에 올랐고, 경기복에는 ‘119’를 새기고 뛰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그는 초심을 잃었다. 신동국은 “잇따라 승리를 거두자 내가 진짜 프로 파이터라도 된 줄 알고 기분이 붕 떠 있었다. ‘이기면 어떤 퍼포먼스를 할까, 어떻게 하면 멋있는 소감을 남길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2019년부터 3년 동안 4연패를 당했다. 좌절의 늪에 빠진 그는 격투기를 관두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지난 6월 부상 선수의 대체자로 출전 제의를 받았다. 상대는 2022년 로드FC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아쉽게 패했던 강자였다. 신동국은 이 경기를 은퇴 무대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소방서 인근에서 200m 전력 질주 훈련을 하는가 하면 두살배기 쌍둥이 아들을 재우고 거실에서 혼자 구슬땀을 흘렸다. 체중도 12㎏이나 줄였다.

전문가들은 신동국이 패할 것이라고 봤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는 TKO승을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했다. 게다가 지난달 경기에서도 승리를 추가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신동국은 “내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40~50대 아저씨들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또, 소방관들이 목숨을 내걸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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