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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모녀 1년뒤 40대女 참사…이번에도 실거주지 못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 우편함에 전기 요금 영수증 등이 꽂혀 있다. 지난 8일 해당 원룸에 사는 A씨(40·여)가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김준희 기자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 우편함에 전기 요금 영수증 등이 꽂혀 있다. 지난 8일 해당 원룸에 사는 A씨(40·여)가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김준희 기자

전북 전주의 한 원룸에서 생활고를 겪다 숨진 40대 여성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숨진 여성 곁에는 4세로 추정되는 남자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지난해 8월 가난과 질병을 겪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비슷한 비극이 1년 만에 반복된 셈이다.

우편·전화·방문에도 닿지 않은 전주 40대…위기 발굴 구멍?

1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8일 전주 완산구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여성 A씨는 지난 7월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집중 발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복지부는 건강보험료 체납이나 단전·단수 등 39가지 위기 정보를 토대로 위기의심 가구를 발굴하고 있다. 세 가지 이상을 내지 못해 고위험군으로 보이는 20만 명을 추려 조사대상자로 지자체에 통보한다. A씨는 건강보험료 56개월 치를 내지 못해 체납액이 118만6350원에 달했고, 공동주택관리비나 가스비·통신비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복지부 통보에 따라 전주시는 A씨에게 지난 7월쯤 지원 대상임을 알리는 우편을 보냈다. 8월에는 A씨 휴대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지난달 24일엔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주소지로 찾아갔으나 A씨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전입신고 서류에 호(戶)수가 적혀있지 않아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입신고 때 아파트라면 동·호수를 적게 돼 있지만, 다세대주택 등은 적지 않아도 돼 A씨 실거주지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락처·주소지 정보가 없거나 그 내용이 부정확해 위기발굴 대상을 놓치는 경우는 현장에서 적지 않게 발생한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그랬다. 주소 등록지(경기도 화성)와 실거주지(수원)가 달라 관련 지자체가 이들의 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경기도 한 지자체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전화번호 혹은 주소 둘 중 하나는 정확해야 그다음 접근이 이뤄지는데, 그걸 파악하는 과정 자체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도 “채무 관계가 얽혀있거나 가정폭력 등 여러 피해가 있다면 대상자들이 도움보다는 은둔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연말부터 행안부와 통신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비교 분석해, 발굴 대상자의 실거주지 정보를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내용의 사회보장급여법 시행령이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 완전한 대책은 아니다. 통신사가 가진 정보가 부정확할 경우에는 실거주지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파트보다 다가구 주택의 동호수 파악이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기 대상자를 찾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며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에, 매뉴얼까지…문제는 

9일 네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숨진 40대 여성이 살았던 전북 전주시 한 빌라 현관문 앞.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저귀 박스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9일 네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숨진 40대 여성이 살았던 전북 전주시 한 빌라 현관문 앞.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저귀 박스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A씨 옆에서 발견된 아이 역시 아동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출생신고가 안 된 상태였다. 경찰은 A씨와 아이의 친자관계를 조사 중이다. 복지부는 지난 6~7월 의료기관에서 태어났으나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2015~2022년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2123명)를 펼쳤지만 이 아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은 아이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A씨처럼 연락이 닿지 않는 부모나 보호자와 함께 지낸다면, 소재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 밖 출생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A씨가 살던 서신동의 주민센터에서 위기 가정 확인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1명이다. 해당 주민센터의 대상자는 올해 550명 정도인데, 공무원 1명이 두 달 안에 발품을 파는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 경기도 한 지자체 돌봄정책과 팀장은 “각 동당 담당자는 보통 1명이고, 확인할 사람은 500~800명 정도 된다”며 “정확하고 특정된 정보가 내려오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 부족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 공무원 1명의 위기 가구 조사 건수는 2018년 45.2건에서 2021년 113.4명으로 3년 만에 2.5배 이상 늘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행안부와 함께 지자체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의 합리적인 인력 운용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명숙 상지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전수조사는 누락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다른 통로를 열어둬야 한다”면서 "정부가 나서는 것과 함께 지역 단위로 혹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서라도 다양하게 위기대상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집, 이사, 연락 두절 등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끝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으로 위기대응매뉴얼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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