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김순열)는 11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권 이사장은 해임 취소소송의 판결이 난 뒤 30일이 되는 날까지 이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해임 집행정지 받아들여진 이유는
이날 재판부는 권 이사장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해임사유 중 상당 부분은 방문진 이사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했다”며 “(권 이사장이) 방문진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사 개인이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방문진이 이사회 구성원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권 이사장을 해임한다고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해임으로 인해 권 이사장 개인이 견디기가 현저히 곤란한 유·무형의 손해를 입을 수 있어, 해임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는 있다고 한 것이다. 1심 판결이 난 뒤 30일까지로 이사장직을 유지하도록 한 것은 행정소송규칙에 따라 항소 여부 등을 고려한 조치로 재판부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다.
MBC·KBS 이사회 구도 변화, 영향은
이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올해 5월부터 시작된 정부의 공영방송 ‘새판 짜기’에 잠시 제동이 걸리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면직안을 재가했다. 7월 10일엔 감사원이 시민단체의 국민감사 청구에 따른 방문진 감사에 들어갔다. KBS도 예외가 아니었다. 7월12일 방통위는 야권 성향의 KBS 윤석년 이사의 해임제청안을 의결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지난달 14일엔 남영진 전 KBS 이사장과 정미정 EBS 이사의 해임안도 의결되는 등 공영방송 개혁에 속도를 냈다. 지난달 25일엔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됐다.
특히 방문진의 경우 권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8월 3일 해임 청문절차 개시)가 해임되면 여권과 야권 성향 이사가 각각 3대 6을 이루던 구도가 5대 4로 재편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경우 안형준 사장 등 현 MBC 경영진 교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날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용됐고, 권 이사장의 본안 재판이 남아있는 상황이 됐다.
다만 같은 날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신명희)는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해임 처분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했다. 남 이사장이 해임으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것은 사실이지만, KBS 이사는 개인의 자아실현보다 의결기관으로 정책적 판단을 하는 공적 부분이 더 강조된다는 이유다. 또 남 이사장이 현재 법인카드 부정 사용 등으로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고, 만약 해임 효력이 정지된다면 KBS 이사회 심의·의결 과정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남 이사장이 해임된 뒤 새 이사 자리를 이미 지난달 21일 황근 선문대 교수가 채웠다는 점도 강조됐다.
남 전 이사장 해임으로 이미 KBS 이사회는 여야 6대 5로 여권 우위로 재편된 상태다. 남 전 이사장가 해임된 뒤 이사가 된 황근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2년 KBS 이사를 지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인사로 평가받는 조준희 YTN 사장은 임기 10개월을 남기고 문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그해 11월 김장겸 MBC 사장도 방문진 이사에서 해임됐다. 이듬해 1월엔 고대영 KBS 사장도 KBS 이사회 해임제청을 거쳐 해임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