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살 아들 곁 숨진 40대女…죽은 뒤에야 날아온 '위기가구 안내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원룸 현관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 있다. 지난 8일 이 집에 사는 A씨(40·여)가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준희 기자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원룸 현관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 있다. 지난 8일 이 집에 사는 A씨(40·여)가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준희 기자

전주시, 지난달 방문…“전화 안 받아”

전북 전주 한 원룸에서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여성이 정부의 ‘위기 가구’ 의심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시가 ‘위기 가구 등록 절차’ 안내문을 발송했지만, 이 여성이 사망한 뒤였다.

전주시는 10일 “보건복지부가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을 통해 지난 7월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전주시에 위기 가구인지 확인해 보라고 알린 대상이 약 1만 명”이라며 “최근 원룸에서 사망한 A씨(40·여)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행복e음에서 네 번째로 통보한 (위기 가구 의심)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행복e음은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구축한 정보 시스템이다. 수도·전기·가스 요금이나 건강보험료·세금 등을 두 달 이상 체납하는 개인이나 가구는 행복e음에 자동으로 등록되고, 이 정보가 전국 각 지자체에 제공된다고 전주시는 전했다. 지자체는 현장 방문·상담을 거쳐 ▶기초연금 ▶영유아보육 ▶기초생활보장 ▶장애인연금 ▶긴급복지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전주시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들이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4일 A씨가 사는 다세대 주택을 찾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만나진 못했다”며 “공과금 체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우편함을 봤는데 비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다시 지난 4일 A씨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불발됐다고 한다. 이후 나흘 만인 8일 위기 가구 등록 절차 안내문 등이 담긴 등기를 A씨 앞으로 발송했다. 그러나 A씨 사후였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9시55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찰과 119구급대원이 발견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집에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리고 며칠째 A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집주인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집 현관문이 잠겨 있어 사다리를 이용해 A씨 원룸에 들어갔다.

거실엔 A씨가 측면으로 누운 채 숨져 있었다. A씨 아들(4)은 엄마 옆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시신 일부는 이미 부패가 진행됐고, A씨 아들은 호흡과 맥박이 약한 상태였다. 집 안은 쓰레기와 오물이 방치돼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 우편함에 전기 요금 영수증 등이 꽂혀 있다. 지난 8일 해당 원룸에 사는 A씨(40·여)가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준희 기자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 우편함에 전기 요금 영수증 등이 꽂혀 있다. 지난 8일 해당 원룸에 사는 A씨(40·여)가 네 살배기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준희 기자

월세·전기료 밀려…국과수 부검 예정

경찰 관계자는 “5평(16.5㎡)도 안 되는 원룸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잡동사니로 어질러져 있었다”며 “엄마가 숨져 아이는 며칠간 굶었을 것”이라고 했다.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A씨 아들은 현재 의식을 회복했다고 한다. 반려견은 동물단체가 보호하고 있다.

경찰은 “(시신 발견) 닷새 전 A씨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 진술을 바탕으로 A씨가 지난 3일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A씨 몸에 외상이 없는 점 등에 비춰 현재까지 타살 등 범죄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 여부 등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다. A씨 병력도 확인할 방침이다.

조사 결과 A씨는 직업 없이 해당 원룸에서 1년 이상 거주했다. 월세를 두 달가량 밀리는 등 생활고를 겪은 정황도 확인됐다. 이날 중앙일보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A씨 집 우편함에는 6~8월 석 달치 전기 요금(21만4410원)이 청구된 영수증이 꽂혀 있었다. 우편함 밖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었다. 안내서엔 “(집배원이) 9월 6일 오전 11시25분 방문했지만, 부재 중이어서 9월 7일 오전 10~12시 재방문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혼 후 아들을 홀로 키웠다. 지난해 어머니 사망 후엔 가족과도 왕래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은 경찰에서 “A씨가 생전 어머니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 내인사(內因死)로 밝혀지면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